1972년 5월 10일 귀환 납북어부들은 속초시청 앞 해동여관에서 5월 15일까지 합동심문반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이 합동심문반은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경찰로 구성되었고, 고성경찰서와 속초경찰서 수사관 10명이 직접 합동심문에 참여했다. 그리고 경찰은 검문검색조 11명, 기동타격대 4명을 해동여관 일대에 배치했다. 범죄사실이 있다면 경찰서에서 적법한 조사를 진행해야 함에도 왜 공안당국은 납북귀환어부들을 여관방에 가둬두고 심문을 했을까?
보안부대의 공문서에서 확인된 것처럼, 5월 13일 합동심문 중에 자살을 기도한 함○욱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5월 15일에는 창동호 선장 김봉호씨와 협동호 선원 3명이 중앙정보부 심문을 받으러 속초공항에서 KAL기 편으로 서울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다른 창동호 선원들은 속초경찰서로, 협동호 선원들은 고성경찰서로 인계되었다. 중앙정보부로 심문을 받으러 간 4명의 선원은 22일 동안 심문을 받고, 6월 7일에 관할 경찰서로 인계되어 정식으로 구속되었다. 5일에서 29일까지 귀환어부들은 정식 구속영장도 없이 불법구금 상태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구타와 고춧가루 물고문, 전기고문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은 귀환 후 심문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크게 당했다고 진술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창동호 선원 장광남(당시 28세)은 지난 2009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 납북귀환어부 기초사실조사에서 “고문 중에 고춧가루를 코와 입 등으로 넣고, 다리 사이로 각목을 넣고 허벅지를 구타하였다”고 말했다. 창동호 선장의 아들 김창권은 “부친이 귀환 후 가족을 보지 못하고 시청 앞 여관에 따로 구금되어 경찰서 보안대에서 나와 고문하고, 북에서 어떤 지령을 받고 내려왔는지 물었다”라고 진술했다.
협동호 선원 이〇호(당시 31세)의 처 이〇〇는 “선장 자격증이 있다고 하여 다른 사람에 비해 추궁을 많이 받았고, 조사받는 도중 구타와 고문, 협박을 심하게 당했으며, 1년 정도 형을 살고 출소 후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다 자살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협동호 선원 이○선(당시 22세)은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속초에서 조사받던 당시 꿇어 앉혀놓고 허벅지를 각목, 몽둥이로 심하게 때려 지금도 고통이 심하다”고 진술하였다. 협동호 선원 장○창(당시 19세)도 “여인숙에서 조사받을 때 구둣발로 가슴을 걷어차여 그 후로 심장이 안 좋다. 발로 차는 것은 기본이고 몽둥이로 때렸다”고 진술했다. 협동호 선원 이○용(당시 17세)의 누나 이○○는 “동생에게 고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나이가 어려 지령을 더 받았을 거라며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라고 진술했다.
진실화해위는 진실결정 보고서에서 “당시 협동호 선원 차○운과 함○욱은 가혹행위로 인해 정신이상증세와 자해 사건이 발생했고, 심한 고문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형사처벌 후에도 일거수일투족 모두 감시
창동호 선원들은 속초에서, 협동호 선원들은 강릉에서 재판을 받았다. 모두 반공법상 탈출죄와 수산업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공법상 찬양고무 및 국가보안법상 금품수수 죄목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창동호 선원 김봉호씨와 협동호 3명은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고, 다른 선원들은 같은 형량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1심 재판 후에 풀려났다.
창동호 선원 중 4명은 2020년 7월 15일 속초지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추가로 2명도 2022년에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협동호 선원 11명은 아직 단 한 명도 명예회복이 되지 않았다. 협동호 선원 11명 중에는 단 3명만 생존해 있다.
납북귀환어부들의 고통은 형사처벌로 종료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까지 납북귀환어부들은 일거수일투족 모두 감시를 받았다. 경찰은 출소한 납북귀환어부를 요시찰인으로 신규 편입하고 내무부와 중앙정보부에 보고했다. 1973년 7월 협동호 차○운은 좌익수전향 B급(납북귀환어부 B급), 요시찰인 을류로 편입되었고,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왔다는 이유로 1년을 복역한 이○호는 좌익수전향 A급(납북귀환어부 A급), 요시찰인 갑류로 편입되었다.
귀환어부에 대한 시찰보고에는 북한방송 청취 여부와 고무찬양 여부, 낯선 사람 접촉 여부, 해외교포 접촉뿐만 아니라, 타지방 방문 사실과 사유, 서신 왕래, 계 또는 친목회 활동, 사생활 동향, 발언내용 등 모든 일상생활도 기록되어 있다. 일은 하고 있는지, 소득은 얼마인지, 누구한테 사채를 빌렸는지, 누구랑 술을 먹고 무슨 말을 했는지, 개인의 비밀적인 사생활까지 모두 사찰기관에서 감시하고 보고했다.
경찰은 매주 납북귀환어부 특이동향을 중앙정보부에 보고했다. 1976년 10월 15일자로 중앙정보부에 보고한 ‘납북귀환어부 행정 내사결과’에 나오는 강원도 납북귀환어부 내사 대상자는 총 525명이다. 경찰서로는 속초 185명, 고성 176명, 강릉 137명으로 3개 경찰서가 절대 다수를 이뤘다.
사찰당국은 그냥 감시만 하지 않았다. 가까운 지인과 이웃을 망원으로 삼아 북한을 찬양하도록 유도심문을 하는 등 함정을 파기도 했다. 위해도 A급으로 분류된 협동호 선원 최○봉의 시찰보고에는 망원을 투입해 북을 찬양토록 유도한 내용이 나온다.
1983년 3월 15일 망원 고○○가 최○봉의 형에게 “늙어빠진 놈이 그물을 지고 다니기 힘드니까 차라리 무산자는 저쪽이 낫지 않겠느냐”라고 유도 질문을 던졌다. 이에 최씨는 “빌어먹어도 여기가 낫지, 거기가 좋다고 그러느냐”라고 답변했다. 열흘 후인 3월 25일, 망원 고씨는 다시 최씨에게 “(동생 최○봉이 협동호를 타고 납북되었을 때 조카인) 네 아들을 보고 왔겠네”라며 유도 질문을 던졌다. 이에 최씨는 “그게 무슨 소리야! 행여나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정색했다. 최○봉의 조카 최○복은 1968년 7월 10일 당시 14세의 나이로 만복호를 타고 납북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이런 유도 질문을 할 수 있는 망원 고○○는 감시 대상자와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경찰관 앞에서 북한 찬양했다고 구속 처벌
실제로 이들 귀환어부 중 2명이 북한을 찬양했다는 죄목으로 추가 처벌을 받았다. 창동호 선원 양○흥은 풀려난 지 1년도 못 되어 가족과 지인에게 북한의 발전상에 대해 발언했다는 이유 등으로 속초지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자격정지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지난해 양씨의 아들 양○○은 부친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다고 속초지원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기각당했으며, 다시 즉시 항고를 신청했다.
협동호 선원 염○선은 예비군 훈련장에서 북한을 찬양했다고 처벌받았다. 염씨는 1977년경 예비군 교육훈련을 받던 중 폭행사건이 벌어져 경찰관들로부터 주의를 받자, 경찰관이 있는 자리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행위를 했다고 구속 기소됐다. 염씨는 속초지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염씨는 경찰과 정보기관의 역용공작과 간첩 색출에 적극 협력했음에도 경찰관 등이 잠수업 허가를 얻어주지 않아 불만을 갖고 고충을 덜어달라는 취지로 불온 언동을 한 것이라고 항소했지만 기각당했다.
납북귀환어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친척도 사찰과 연좌제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 협동호 선원 이○선은 “형사가 사흘에 한 번씩 와서 이북에서 무엇을 했는지 질문을 하고 이전과 진술이 다르다며 꼬투리를 잡아 계속 물어봤다”며, “울산으로 내려갔는데 거기까지 와서 조사를 했고, 20년이 넘게 했는데 매 맞는 것은 잠깐이지만 사람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웠다”라고 했다. 협동호 선원 장○창은 “10년 이상 감시를 받았고, 열흘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조사를 받으라 했고, 주변 이웃에게도 감시하라고 하였다. 어디 갈 때 반드시 신고를 해야 했다. 귀환 후 이장을 했는데 군부대 위문 방문을 갈 때 이장으로 준비를 다 했지만 명단에서 제외되거나 초청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협동호 선원 이○선은 “가족들도 피해를 입었다. 좋은 직장에 갈 수 없었고, 처제는 교사시험에 붙었지만 발령이 나지 않았다. 동생은 외국에 노동자로 나가려 했지만 나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창은 “외국에 나가 있는 친척에게까지 찾아가 나에 대해 물어 봤고, 친척들과도 접촉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같은 협동호 선원 이○수는 “사돈에 팔촌까지 되는 것이 없었다. 나 혼자 매 맞고 사는 것이 낫다 싶을 정도였다. 작은아버지는 이민도 못 갔고, 6촌 형제까지 국가공무원은 물론 취업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최○봉의 자녀 최○○은 “아들이 경찰이 되려고 시험을 봤는데, 1, 2차는 합격을 해도 3차에서 떨어졌다. 3차에서만 세 번 떨어졌다”고 말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