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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 사라진 영랑호 순국5용사 추모비
- 6월에 우리지역 자유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해야 -
등록날짜 [ 2024년06월10일 14시03분 ]


 

지역의 재발견, 순국5용사비(殉國五勇士碑)를 아십니까? 지난 겨울방학기간에 영랑호 보광사 뒷산 언덕 순국5용사 추모비를 찾아 헤맸지만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한국전쟁 당시 자유 조국을 위해 북한공비를 토벌하다 이곳 영랑호에서 산화한 순국5용사를 추모하듯 햇살에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은 빛이 더하다.
속초문화원 발간 <속초의 옛과 오늘>(1997) 82면에 “영랑호 공비토벌작전 5인의 용사들과 그 용맹-1951년 7월부터 개성과 판문점에서는 휴전 회담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전선에서는 매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후방에서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비들이 잔악한 살상행위를 계속하고 있었으며 산속에 근거를 둔 공비들의 준동은 1950년 말에서 1951년 봄에 걸친 강력한 토벌작전으로 그 세가 현저히 약화되고 있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북한은 금강정치학원을 설치하고 공비들을 양성하여 1952년부터 수백명을 남파시키고 있었다. 속초지역에서도 공비들이 밤이면 마을까지 내려와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1952년 10월, 영랑호 부근에서 일어난 5용사의 공비소탕작전은 공비들의 준동이 얼마나 극에 달했던가를 말해주는 좋은 예이다. 영랑호 공비토벌 중 전사한 5용사는, 북한에서 부모형제가 공산당에 의해 학살되고 재산을 몰수당한 청년들로서, 영랑호 부근에서 공비와 접전, 20여명을 소탕한 뒤 납치된 주민들을 구하고, 포위 공격해 오는 한 떼의 공비를 맞아 다시 사투를 감행하여 40여명의 적을 더 사살하였으나, 모두 장렬히 전사, 영랑호반에 잠들고 만다. 다섯 용사들은 다음과 같다. 김덕범(金德範)함경남도, 지창하(池昌河)함경북도, 이기구(李基九)함경남도, 김병선(金炳善)평안남도, 김화수(金化壽)평안남도). 속초주민들은 이 오용사의 무덤을 영랑호 동남쪽 보광사 남쪽 언덕에 마련하였으며 그 후에 이를 높이 기리기 위해 1961년 8월 15일 ‘순국 오용사 추모비’를 세웠다. 매년 10월이면 오용사의 제사를 지냈으며 그들의 반공정신을 추모하고 있다. 1981년 4월 5일 오용사의 유골을 화장하여 보광사에 봉안하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232면에는 “1961년 8월 15일 순국 5용사비(殉國五勇士碑)-속초시 동명동 보광사 뒤편 언덕 오용사의 묘 옆에 있었으나 5용사 묘가 없어지면서 비도 없어졌다. 순국 5용사는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월남한 김덕범(金德範,함경남도), 지창하(池昌河,함경북도), 이기구(李基九,함경남도), 김병선(金炳善,평안남도), 김화수(金化壽,평안남도) 등이었다. 5용사는 6.25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22일 태백산맥에 근거를 두고 속초지역의 무고한 양민을 괴롭히던 북한 패잔병 출신 공비들과 영랑호에서 교전하다 전사한 용사들이다. 속초지역민들은 영랑호 동남쪽 보광사 뒤편에 5용사의 유택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오고 있었으나 1981년 4월 5일 유골을 화장하여 영령만을 보광사에 봉안하였으며 1961년 8월 15일 강원일보사 속초지사에서 순국5용사비의 건립을 추진하여 재향군인회 속초지회 서재홍(徐在鴻) 전 회장이 건립비를 부담함으로써 이들의 높은 순국의 얼을 더욱 빛나게 했다. 비석의 규모는 비석기단 높이는 39cm, 비석높이는 76cm, 경내면적은 6.116m2(20평)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라진 순국5용사 추모비는 2015년 속초문화원 장롱사진공모전에 속초역사의 산증인 이춘복 설악신문 이사가 ‘순국 5열사묘 이장참관’ 사진을 출품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에 관해 <설악신문>은 2015년 10월 7일자에 “속초문화원은 심사를 통해 영랑호 일원에 안장됐던 5용사 묘를 유원지 개발로 보광사 인근 언덕으로 이장하는 참배식(1961년)을 찍은 ‘순국5열사묘 이장참관’을 금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문화원은 ‘이 사진은 출품인의 속초중학교 11회 졸업앨범에서 복사한 사진이다. 원본 사진이 없는 점이 아쉽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기록가치가 뛰어나고, 출품인이 이 사진 외에도 약 30여 점을 출품해 1960~70년대 당시의 시대상을 잘 전달해 주었다’고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참배식 사진에는 유골을 전달하는 당시 속초중 학생회장과 참관하는 속초여중 학생 모습이 담겨 있다.”는 내용을 기사로 실었다.  그러나 지금은 순국5용사 추모비 흔적도 없다. 엉뚱하게 인터넷에는 보광사 연못의 정자돌기둥이 순국5용사비라고 잘못 퍼지고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 자유특별시 속초를 위해 희생하신 그 분들을 기억해야 하건만 추모비도 지켜내지 못해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최철재,경동대 온사람교양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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