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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 시(詩)로 풀어보는 시(時)시(市)한 이야기 22 - 아버지의 손
등록날짜 [ 2024년07월02일 10시00분 ]

아버지의 손 / 여영현  
고구마밭에서 잡풀을 뽑았더니/ 초록의 피비린내가/ 목장갑에 배었다// 잡풀이 생존하는 방법은/ 움켜쥐는 것뿐이다/ 줄기는 뿌리를 움켜쥐고 뿌리는/ 흙을 움켜쥔다// 아버지는 손이 컸다/ 항상 움켜쥐는데도 끝내 뽑혔다/ 나는 그게 싫었다// 고구마밭에 붉은 꽃이 피었다/ 살아남으려는 것은 서로 닮았다//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군가를 닮아서 더 그렇다.//

 

지인의 텃밭에 갔다가 오랜만에 고구마꽃이 핀 것을 보았다. 오래전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 바닷가 근처 모래가 많은 땅에는 으레 고구마를 심었다. 꽤 오래 고구마라는 작물을 대하면서도 꽃을 본 기억이 없었다. 당연히 고구마는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기후변화로 날씨가 더워지면서 주변에서 고구마꽃을 가끔 보게 되었다. 남미 지방이 원산지인 고구마는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꽃을 피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더운 날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심심찮게 고구마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존재를 마주친 그 순간의 낯선 느낌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시인은 고구마밭에 난 풀을 뽑으며 사람 사는 방식에 생각이 닿았나 보다. ‘초록의 피비린내’가 나도록 풀을 뽑았다는 것은 아마추어 농부라는 뜻이다. 한 손으로 풀을 쥐고 호미로 뿌리까지 캐내야 하는 데 힘으로 잡아뽑은 모양이다. 잡초 또는 잡풀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사람 중심의 단어이다. 고구마밭에서는 고구마 줄기와 잎이 아니면, 모두가 잡초이다. 배추밭에서는 배추를 제외한 모든 식물이 잡풀에 불과하다. 비가 내린 뒤 흙이 물기를 조금은 가지고 있을 때 풀 뽑기가 잘돼서, 어제 모처럼 아이 가게 마당의 풀 뽑기 작업을 했다. 흙이 많은 곳의 풀은 쉽게 뽑아지는데 돌 틈이나 축대 사이에 끼인 풀들은 좀체 뿌리를 내 주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줄기는 뿌리를 움켜쥐고, 뿌리는 흙이 아니라 돌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잘 뽑히지 않는 풀에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움켜쥐기보다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늘 쉽게 뽑혀 나가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아버지 뿌리가 약했기 때문이다. 아니 움켜쥔 흙이 너무 물렀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의 갑남을녀가 시인의 아버지처럼 쉽게 뽑히는 존재일 것이다. 쉽게 뽑히지 않으려고 뿌리를 내린 곳이 깊지도 못하고, 움켜쥔 흙이나 돌이 너무 약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비빌 언덕이나 뿌리내릴 곳이 있어야 하건만, 가진 거라곤 큰 손뿐이다. 잡초라는 이름은 슬프면서도 늘 강하다. 원래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으면 고구마는 잡풀을 이길 수 없다. 배추밭의 저 푸른 배추도 사람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잡초밭에 가려 보이지도 않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도 그렇다. 권력과 돈이 서로의 뿌리를 움켜쥐고 재벌과 재벌이, 재벌과 부패한 정치가가 커넥션을 만들고 그들만의 고구마밭을 가꾼다. 그 밭에서 그들은 고라니가 귀찮아 울타리를 치고, 잡풀이 자라는 게 보기 싫다고 제초제를 뿌린다. 그들의 텃밭에서 우리는 민들레도, 쑥도, 할미꽃도, 쇠뜨기도, 바랭이풀도 아닌 그저 잡풀이다. 
시인의 아버지도, 시인도 그런 잡초를 닮았다. 그래서 고구마밭에서 뽑혀 나가며 ‘초록의 피비린내’를 풍기는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것이다.
 마당가 풀뽑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시원한 냉수 한 컵을 가져온 아내가 널부러진 풀 무더기를 보더니 ‘그래도 살겠다고 아득바득 버티더니…’ 문득 풀 비린내가 확 올라왔다. 

 

김종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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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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