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뉴스홈 > 오피니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사는이야기 / 미시령(彌矢嶺) 별칭 연구
등록날짜 [ 2024년07월09일 10시31분 ]


지역의 재발견, 미시령의 다른 이름들을 살펴본다. 미시령의 한자 의미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속초와 인제 그리고 고성을 잇는 해 발 826미터의 고갯길이다. 필자가 기고한 <설악신문> ‘미시령 눈사태 생 존기’에서 보았듯이 예전에는 겨울이면 눈사태로 길이 끊기고 사람과 말이 얼어 죽는 일이 잦았다. 이번에는 김광섭 고성군 향토사학자의 논문 ‘조선시대 한시에서 미시령을 찾다’에서 미시령 별칭들을 알아본다.

 

미시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간성군 산천조 에 “미시파령(彌時坡嶺) 고을 서남쪽 80리 쯤에 있다. 길이 있으나 예전에는 폐지하고 다니지 않았는 데 성종(成宗) 24년(1493)에 양양부 소동라령(所冬羅 嶺,한계령)이 험하고 좁다하여 다시 이 길을 열었다 (彌時坡嶺在郡西南八十里許有路舊廢不行 成宗二十 四年襄陽府所冬羅嶺險 阨復開此路)”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지(東國輿址志)에는  미시파령(彌時坡嶺)과  함께 여수파령(麗水波嶺)이라고도 한다고 적혀 있다.

간성군 읍지(邑誌)에는 미시파령과 미시령(彌矢嶺) 이 함께 나온다. 관찬기록이라 미시파령이지 실제는 조선후기에 이미 미시령으로 불리었던 것이다. 또한  민간기록인 택리지(擇里志)에는 미시파령, 미시령 대 신 연수령(延壽嶺), 연수파령(連水坡嶺), 여수파령(麗 水波嶺)이 더 많이 나온다. 따라서 오늘날 미시령은  간성군 읍지의 기록근거 때문이다.
첫째, 물 수(水)를 사용했다. 조위한(趙緯 韓,1567~1649)의  현곡집(玄谷集)권7에  ‘미수파(彌 水坡)’라는 한시가 있다. 그가 1636년 미시령을 넘 어 양양부사로 부임할 때 깊은 골짜기 물이 쉼 없 이 흘러감을 한시 제목에 붙인 것이다. 김창흡(金 昌翕,1653~1722)은 삼연집(三淵集)권10에 ‘상 미수령(上彌水嶺)’  한시  2수가  있고,  김시보(金時 保,1658~1734)는 모주집(茅洲集)권4에 ‘미수령득고 자(彌水嶺得高字)’ 한시 3수에서 미수령(彌水嶺)이라 했다.
둘째, 모름지기 수(須)를 사용했다. 구문유(具文遊, 1644~1718)의 예곡유집(禮谷遺集)권1에 미수파(彌 須坡)라는 한시 2수가 있다. 모름지기 ‘수’는 마땅하다 는 의미로, 미시령은 오래 걸리는 고개가 당연하다는  뜻으로 유추할 수 있다. 저자는 1680년(숙종6) 간성 군수를 지낸 구음(具崟)의 아들이다. 부친이 계신 임 소를 찾아 머무는 동안 많은 시작을 남겼다.

셋째, 숟가락 시(匙)를 사용했다. 최성대(崔成 大,1691~1762)의 두기집(杜機集)권4에 미시령저(彌 匙嶺底)가 나온다. ‘미시령아래 용두촌에서 잠시 쉬 면서-미시령은 일명 연수파’라는 제목의 한시이다.  미시령 고개가 높아 이른 새벽에 떠나야 점심때 정상 에 도착한다는 의미로 고개 이름에 숟가락 시를 넣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가 1750년 1월 양양부사 로 도임하는 길에 남긴 한시이다. 그의 관직은 대사 헌에 이르렀다.
넷째, 지금의 화살 시(矢)이다. 날아가는 화살도  넘기 힘들다는 뜻이다. 강원도관찰사 이휘정(李輝 正,1760~?)의  방야만록(方野漫錄)권3과  양양부사  김몽화(金夢華,1723~1792)의 칠암집(七巖集)권3 한 시에 미시령(彌矢嶺)이 있다. 1787년 가을의 설악산 을 돌아보고 쓴 기행문 유설악록(遊雪嶽錄)과 고성기 행록(高城記行錄)이 있다.
또한,  때  시(時)를  사용했다.  양양부사  채팽윤( 蔡彭胤,1669~1731)과  삼척부사  이최중(李最中,  1715~1784)의 한시에는 미시령(彌時嶺)이 있다. 김 유(金楺,1653~1719)의 검재집(儉齋集)권20 유풍악 기((游楓嶽記)에는 “고개를 미시(彌時) 혹은 미일(彌 日)이라고 칭하고 속세에서는 연수파(烟樹坡)라 부른 다.”(嶺卽名彌時而或稱彌日 俗號烟樹坡)고 했다. 지 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연대별로 미시파령에서 미 시파로 그리고 미시령으로 불리었다.
오늘날 미시령 옛길은 1951년 제1101야전공병단 이 착공 6개월 만에 개통했는데 한국전쟁 중에 피와  땀으로 건설하여 충통로(忠通路)라 이름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당시 제1군단 참모장인 최홍희 장군의 ‘忠 通 檀紀四二八四年十月 日 第一一0一野戰工兵團’ 글 씨를 미시령 옛길 암벽에 새겼는데 지금도 또렷이 남 아 있다. 1959년에 자동찻길로 확장 재개통하였고, 이때 이승만 대통령 친필 휘호 미시령(彌矢嶺) 초서 체 기념비를 정상에 세웠다.

 

최철재, 경동대 온사람교양교육대학 학장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좋아요 0 싫어요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기고 / 설악동, 아 옛날이여! <1> (2024-07-09 10:50:30)
기고 / 경동대, 동우대 부지매각 논란…속초시민 뿔났다 (2024-07-02 10:09:48)
속초의료원 응급실, 의료진 부족...
플라이강원 인수·합병 최종 마...
양양국제공항 국제선 하늘길 다...
고성군, 공공와이파이 현장점검
도 “신규 케이블카 6개소 본격 ...
고성군 50세 이상 대상포진 무료...
1
야생동물 강렬함 야생의 화법으로 표현
탁노, WILD AURA 2017 eagle 004. 속초 복합문화공간 피노...
2
양양국제공항 국제선 하늘길 다시 열려
3
플라이강원 인수·합병 최종 마무리 전망
4
속초의료원 응급실, 의료진 부족으로 또 축...
5
도 “신규 케이블카 6개소 본격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