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품샵 ‘아시안하이웨이’를 운영하는 이주헌·선다은 부부.
“이 포스터는 청초호에서 돌고래를 보았다는 아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구상했어요. ‘우리는 언제 볼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어쨌든 속초 앞바다에도 돌고래가 있다니 신기했죠.”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5분, 번영로105번길 사거리 모퉁이에 위치한 기념품샵 ‘아시안하이웨이’의 제품들은 조금 특별하다. 이주헌·선다은(34) 씨 부부가 아끼는 상품 중 하나라며 보여준 포스터에는 분홍 배경의 노을진 청초호와 돌고래 두 마리, 설악대교 이미지가 한눈에 담겼다. 이처럼 동해바다, 설악산, 영랑호 등 속초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이름들이 ‘아시안하이웨이’ 안에서 친근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과 색감으로 재탄생해 숨 쉬고 있다.
로컬 감성의 포스터와 엽서. 실제 이들이 보고 느낀 속초의 풍경에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
설악산 반달곰·영랑호 수달·청초호 돌고래…
이주헌·선다은 씨 부부는 7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자연이 주는 영감을 원천 삼아 의류, 프린트, 기념품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기념품샵을 연 지 2년째로, ‘아시안하이웨이’라는 이름도 7번 국도가 아시안하이웨이의 일부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티셔츠를 메인 상품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엽서, 포스터 등 지류 디자인 상품을 중심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독특한 질감과 색감이 특징인 리소프린트, 한글 타이포그래피 등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설악산의 반달가슴곰, 영랑호의 수달, 청초호의 돌고래 등에 그들만의 상상력을 더해 그래픽 디자인으로 담아낸다.
특히 다양한 한글 디자인 제품들이 돋보였다. ‘동해대로’, ‘대청봉’ 등 익숙한 단어들도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한 이주헌 디자이너의 손길이 더해지니 새로운 여행길 위에 있는 듯한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곳에 여행을 가면 대부분 티셔츠가 있는데 JEJU, SEOUL 등 영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한글로 디자인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도 한글 타이포 전공을 살려 한국의 멋과 선을 살리고 우리의 색깔도 담아보자는 생각에 한글 셔츠와 마그넷, 스티커 등을 만들게 되었죠. 저희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들이라 자부심도 있어요.”
‘아시안 하이웨이’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제품은 두 사람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작은 매장은 ‘속초’스러움과 그들만의 센스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 툭 던지는 아이디어에도 핑퐁처럼 서로 다른 인사이트를 주고받고, 리듬감 있게 피드백이 오가다 보면 어느새 한 제품의 가닥이 잡힌다고 한다. 속초에 와서 함께 즐기며 경험한 것들을 녹여낸 부부만의 작업 방식이다.
선다은 씨가 속초에 처음 발을 디딘 건 8년 전이다. 속초 여행을 함께 온 친구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정착해버리자, 바다와 낚시를 좋아하던 커플은 자연스레 속초를 자주 찾게 됐고, 어느새 이주까지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오랜 촬영 일로 번아웃된 것도 계기였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이주헌 씨와 상의 끝에 속초로 이주를 결정하고, 한 달 만에 정리하고 내려왔다. 두 사람 모두 서울에서 살다 왔지만, 이제는 하루만 서울에 가도 답답함에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주헌·선다은씨가 직접 디자인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스티커와 마그넷. 속초, 고성, 양양 등 지역명과 주요 관광 명소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개성 있는 로컬브랜드 가게들 많아져야
매장 내에 비치된 엽서와 패브릭 포스터 등에는 속초의 자연 풍경도 담겨 있는데, 촬영 일을 했던 선다은 씨가 속초 곳곳을 다니며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꾸밈없이 담백한 모습들이 여행객은 물론 지역주민들조차 쉽게 지나쳤던 속초의 자연을 재발견하도록 이끄는 힘을 지녔다. 매장 한쪽의 스튜디오에서 기념사진 패키지 구매도 가능하다.
매일 아침 강아지와 영랑호를 산책한다는 이들은 영랑호와 인접한 동네가 더욱 활성화되어 다양한 가게들이 공존하는 거리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쳤다. 많은 관광객이 속초관광수산시장과 해수욕장에만 집중되지만, 영랑호의 아름다움처럼 속초 곳곳의 매력이 더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저는 이곳이 유동인구가 많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동네라고 생각했거든요. 매장에 있다 보면 여행객 중 바다보다 영랑호를 먼저 보러 오시는 분도 있고, 크루즈가 들어왔을 때도 바다보다 영랑호가 보고 싶어 온 외국인 분들이 길을 물어보기도 했어요.”
이처럼 속초의 또 다른 매력을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하는 두 사람은 ‘로컬 브랜드’로서의 자부심도 분명하다. 속초와 관련된 디자인을 직접 만들고, 지역성과 감성을 담은 제품을 소개해온 시간이 쌓이면서, 이제는 공공기관이나 지역 학교에서도 디자인 외주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방향성에 맞게 디자인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속초하고 관련된 뭔가를 꾸준히 해오다 보니, 공공기관이나 학교, 호텔업계에서도 저희를 로컬 디자인 브랜드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속초에서 개성 있는 로컬 브랜드 가게들이 늘어나는 흐름을 이들은 반겼다. 경쟁보다는 취향의 다양성으로, 함께 공존하고 살아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쁜 가게들이 많아져야 오히려 골목에 사람들이 더 찾아와요. 우리랑 겹쳐도 상관없고,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손님들이 여기저기 둘러보며 머물게 되는 거잖아요. 하나만 있으면 하나만 보러 오는 사람이지만, 여러 곳이 있으면 속초 전체가 더욱 매력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묻자,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아시안하이웨이가 속초를 대표하는 기념품 샵이 되면 좋겠지만, 거기 가면 다 직접 디자인한 제품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듣는 게 저희에게는 제일 큰 기쁨이에요.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속초가 품고 있는 산과 바다, 호수의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계절과 시간에 따라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듯, 이들 부부의 시선을 거친 속초의 새로운 얼굴들이 앞으로 어떤 디자인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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