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토성면 아야진에 사는 78세 고령의 김수성 씨는 지금 애를 끓이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납북귀환어부로 억울하게 처벌받은 누명을 벗으려 하는데, 이름 때문에 재심 신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씨는 1968년 납북되었다가 돌아와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1년 간 옥살이를 했다. 김 씨는 억울함을 풀고자 지난 2021년 12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해, 3년 4개월을 기다린 끝에 지난 4월초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결정문을 통지받았다. 지난 3월 28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김수성 씨가 납북귀환 후 35일 동안 불법구금 상태에서 고문을 받고, 불법 수집된 증거로 재판에서 반공법 위반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진실결정문을 받은 김 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재심을 신청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이름 때문에 뜻하지 않은 일로 어려움에 빠졌다. 자신이 납북귀환 후 판결문과 수사기록에 기재된 ‘김달성’이라는 걸 증명할 서류를 찾지 못했다. 재심 신청을 하려면 김 씨는 자신이 ‘김달성’이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
22살에 출생신고된 걸로 기록
김 씨는 변호사 선임을 위해 고성군 토성면사무소에서 본인의 주민등록초본,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제적등본을 모두 뗐다. 그런데 어떤 증명서류에도 본인 이름이 예전에 피해자로 나온 김달성이었음을 입증하는 내용이 없다. 더욱 황당한 건 증명서류에는 모친이 1947년생인 자신을 1969년 11월 10일 김수성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한 걸로 기록되어 있다.
행정에서 발급받은 김 씨의 증명서를 보면, 1969년 출생신고 이전에는 1947년생 김수성 본인도, 옛 이름의 김달성도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김 씨는 김달성 이름으로 두 번이나 납북되었다가 돌아와 간첩으로 몰려 온갖 고초를 당한 건 분명하다.
출생신고를 한 1969년 11월 10일이라면 김 씨가 납북귀환사건으로 1년 옥살이를 마칠 무렵이다. 만약 서류에 나오는 대로 이때 모친이 22살의 김달성을 출생 신고한 게 맞다면, 당시 모친은 두 번씩이나 납북되었다가 돌아와 갖은 고초를 당한 아들이 ‘김수성’이라는 새 이름으로 더 나은 생을 살라고 이름을 바꿔 출생신고를 했을 수도 있다.
궁리 끝에 60여년 전에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에는 자신의 옛 이름인 김달성의 학적부가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아야진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거진읍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1960년 졸업생 김달성의 학적부를 떼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졸업생 김달성의 학적부는 존재하는데, 신청자 김 씨가 김달성 본인이라는 걸 입증하는 서류를 가져와야만 발급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김 씨는 다시 거진읍사무소에 가서 본인의 증명서류를 떼어 학교를 찾아갔다. 그러나 역시 이 서류만으로는 김 씨가 김달성 본인이라는 걸 증명할 수 없어 학적부 발급이 어렵다고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김 씨는 지난 4월 21일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정보공개 청구서를 작성해 학교를 다시 찾아갔다. 세 번째 방문이다. 자신이 김달성이라는 걸 입증하는 증명서류는 없지만, 김달성 학적부와 자신의 생년월일이 일치하고, 모친 이름이 같다면 본인이 김달성이라는 게 입증되는 것이니, 학적부를 발급해달라고 정보공개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학교측으로부터 김수성이 김달성임을 입증해줄 책임이 학교에는 없다는 이야기만 듣고 다시 신청서를 돌려받아 나왔다. 78세 고령의 노인은 자신의 초등학교 학적부가 자신의 옛 이름이 김달성임을 입증해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정작 초등학교 학적부조차도 자신이 김달성이라는 걸 증명할 수 없기에 발급받지 못했다. 김 씨는 심한 실망감을 안았다.
김 씨만이 아니라 상당수 납북귀환어부들도 수십 년 전의 기록과 서류에 기재된 생년월일이 틀린 경우가 많다. 상당수 피해자는 이미 생을 달리했기에, 망인이 피해 당사자임을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번 납북 피해, 미군정보기관에도 끌려가
김수성 씨는 분단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힘든 삶을 살아왔다. 1947년 양양군 속초면 대포리에서 태어난 김 씨는 4살 때인 1951년 한국전쟁 중에 부친을 잃었다. 김 씨는 모친으로부터 “너희 아버지가 전쟁 중에 국군 선발대로 올라와 양양 인구의 어느 민가에 숨어 들어갔는데, 집주인이 신고해 들이닥친 인민군에 쫓겨가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모친은 “후에 국군 부대장이 와서 이같이 남편의 사망 사실을 전해줬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고 김 씨는 모친의 재가로 고성군 거진읍으로 이사와 살면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김 씨는 “초등학교 학적부에는 나와 성이 다른 양부와 친모의 이름이 올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생계가 어려워 배를 타다가 20세 때인 1967년 11월 3일 납북되었다가 그해 12월 26일 거진항으로 돌아왔다. 1967년 11월 3일 동해안 최대 납북사건이 발생할 때 김 씨도 같이 납북되었다. 이날 김 씨가 탄 금창호 선원 6명을 비롯해 총 13척 79명의 어부들이 총포격을 앞세우고 우리 해상에 넘어온 북한 경비정에 강제로 붙잡혀 갔다. 돌아온 김 씨는 며칠간 불법구금되어 조사를 받고 불구속 상태로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1968년 4월 춘천지법 속초지원에서 반공법 위반은 무죄를 선고받고 수산업법 위반에 대해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의 항소로 진행된 춘천지방법원 재판 출석을 앞두고 김 씨는 1968년 7월 9일 거진항에서 만복호를 타고 오징어잡이에 나갔다가 다음날인 7월 10일 다시 납북되었다. 만복호 13명 선원 중 한 명은 납북될 때 사망했고, 선장 아들 최○복(16세), 장○구(14세) 등 4명은 미귀환했다. 김 씨를 비롯해 만복호 선원 8명은 그해 11월 1일 다른 어선의 납북 선원들과 함께 거진항으로 귀환했다.
김 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동해 어로저지선을 넘으려면 대진항을 넘어야 하는데 만복호는 거진 앞바다에서 조업했다. 거진 앞바다에서 조업 중 북한군이 보트를 타고 와서 총으로 위협하며 북으로 끌고갔다”고 말했다.
거진항으로 돌아온 만복호 선원들은 해군방첩대 조사를 받고, 고성경찰서 정보과 사무실 및 창고 등에 수용되어 중앙정보부와 군방첩대, 경찰로 구성된 합동심문반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내무부와 강원도경찰국의 지시로 11월 18일 미군 502수용소로 인계되어 전략심문을 받고 11월 29일 11일 만에 다시 고성경찰서로 인계되어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12월 5일 구속영장 집행으로 구속되었다. 김 씨는 귀환 후 구속영장 집행까지 35일간 영장도 없이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심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받은 것이다.
김수성 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거진항을 통해 귀환 후 고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어딘지는 모르지만 서울에 가서 고문받았고, 바로 속초 유치장으로 가서 3개월을 있으면서 1년을 선고받고, 춘천교도소에서 1년을 형을 살고 귀가했다. 고성경찰서에서 수용 당시 수사관이 조사하면서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차면서 폭행했다. 나는 한이 맺혀서 아직도 그 형사가 기억난다. 미군들이 근무하는 수용소 독방에 가둬놓고 조사를 받았다. 그곳에서 구타와 고문은 없었는데, 거기서 나와서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어디 지하실로 가서 전기고문·고춧가루 고문을 당해서 피똥을 쌌다. 월선하지 않았는데 월선했다고 자백하라고 때렸다. 고성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어머니가 면회를 왔지만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당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도 강제로 서명하게 하였다”라고 진술하였다.
김 씨가 끌려간 502수용소는 미군 502군사정보단이다. 1952년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들어선 미군기지 캠프그레이 안에 위치했다. 502군사정보단은 미군 대공수사기관으로 주로 귀환어부, 간첩, 귀순병 등을 상대로 대공수사를 진행했다.
만복호 선원 중에도 선장과 기관장, 두번 납북귀환한 김 씨까지 3명은 구속, 5명의 선원은 불구속으로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김 씨는 1969년 4월 17일 1심 속초지원에서 반공법 탈출죄와 수산업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1969년 7월 31일 검찰의 항소로 진행된 춘천지방법원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2심 선고 형량이 1심보다 징역 2개월이 더 늘어났다.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재심 고대
김 씨는 옥살이를 하고 풀려나서도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했다. 김 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석방 후 배를 탈 때, 귀항 후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늘 신고해야 했다. 경찰들이 수시로 집에 있나 없나 감시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납북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아들이 공무원 시험을 본 뒤 신원조회에서 떨어진 뒤 가족들이 나의 납북을 알게 되었다”라고 진술했다.
김 씨는 지난 2009년 4월 통일부 납북피해자보상 및 지원심의위원회에 납북피해자 보상금 및 의료지원금 지급을 신청했다. 김 씨는 신청서에 “미군부대 내 정보기관으로 추정되는 곳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는데, 양쪽 귀 고막이 터져서 제대로 듣지 못해 더 심하게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김 씨는 “고문받은 후 먹으면 모두 토해 80kg의 몸이 40kg로 줄었으며, 집으로 돌아와 3년간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으며 지금도 이명현상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질병인지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고 김 씨의 보상금 및 의료지원금 지급을 거절했다.
지난 3월 25일 진실화해위는 그동안의 조사를 통해 신청인 김수성이 피해자 만복호 선원 김달성과 동일인임을 확인하고, 진실결정문 조사보고서 만복호 선원 난에 “김수성(1947) / 생존 / 선원 / 본인 / 성명 상이(김달성)”라고 기재했다. 진실화해위 진실결정문의 해당 내용을 근거로 국가기록원에 김달성의 판결문과 형사사건 기록 공개를 요청하면, 재심 필요 서류를 확보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2009년 처음 납북피해자 보상 신청에 나설 때 62살이었던 김 씨는 이제 78살 고령의 노인이 되었다.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명예와 피해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 김수성, 아니 김달성의 피해와 명예가 제대로 회복되려면 앞으로 또 몇 년이나 걸릴까? 그동안 다니던 공공 일자리도 끊겨 하루 입살이도 어려운 김 씨. 앞으로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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