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헌 / 시인
나라의 지도자를 뽑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뽑아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선진국이라고, 경제 대국이라고 큰소리치던 대한민국에서 말입니다. 더구나 ‘탄핵’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똑같은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만난 그림책입니다. 파비안 네그린 작가가 글을 쓰고, 마리아키아라 디 조르조 작가가 그린 ‘왕의 이름’이라는 그림책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주 먼 옛날,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사라진 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왕을 뽑는 방법이 아주 독특했어요. ‘왕의 이름은 모든 수탉이 합창으로 불러야 한다.’”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왕이 세상을 떠나면 다음 왕이 정해질 때까지 나라는 극심한 혼란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평범한 소시민들에겐 재앙입니다. 먹거리도, 생활환경도, 경제도 극도로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런 대재앙이 닥칠 때마다 어김없이 누군가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수탉들이 자기 이름을 외쳤다고 주장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적이 되었고, 왕국은 두 쪽으로 갈라져 싸움이 일어납니다. 서로의 생각과 이익에 따라 줄을 서게 됩니다. 그러나 기나긴 싸움 속에서 힘없는 사람들만 굶주리며 지쳐가고 죽어갑니다.
이야기를 읽어가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혼란을 틈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려는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이 나쁜 걸까요? 아니면, 물색없이 어느 한 편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상대편을 적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군중이 어리석은 걸까요?
49:51. 단 2%의 차이로 한 나라의 미래와 수많은 국민의 삶의 방향과 질이 달라지는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은 계속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일까요?
인간의 삶을 구축하는 틀을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종교, 정치라는 여섯 개의 개념으로 본다면, 정치가 다른 네 개의 가치를 지배하는 지금의 사회구조는 과연 옳은 걸까요?
오늘 우리나라의 차기 지도자가 후보자가 될 사람들의 윤곽이 어느 정도 나왔습니다. 그들이 방송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진짜 저들은 국민을 위해 지금 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저렇게 애를 쓰고 있는 걸까?’
다시 그림책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다 결국 불리해진 한쪽이 항복하고 다른 편의 한 사람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수탉들이 그의 이름을 일제히 외쳤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새 왕은 무너진 왕국을 바로 세우고 20여 년 동안 백성들의 일상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은 거대한 귤을 먹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백성들은 또다시 닥쳐올 무질서와 싸움과 굶주림을 떠올리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새벽녘,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모든 수탉이 새 왕의 이름을 또렷하게 외쳤습니다. ‘꼬끼오’
사람들은 모두 노래를 부르며 새 왕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세탁소집 소년의 이름이 ‘꼬끼오’이기 때문입니다. 소년의 부모님은 20여 년 전 전쟁으로 가난과 굶주림을 겪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의 이름을 ‘꼬끼오’ 라고 지어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답니다.
이 책은 한 나라의 지도자와 사회시스템이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일을 가져오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우화입니다. 책을 덮으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의 ‘꼬끼오’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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