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뜨경 멤버들은 ‘여름에 계곡에서 발 담그고 뜨개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으로 계곡 뜨개를 시작했다.
“We Need LOVE, We Knit LOVE!” 사랑과 뜨개질,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들이 있다. 무아지경으로 뜨개를 한다 해서 이름마저 ‘무아뜨경’이 된 모임은 뜨개와 사랑에 빠진 4명의 뜨개청년들이 운영하고 있다.
‘주경야뜨’에서 ‘무아뜨경’으로
‘무아뜨경’의 전신은 ‘주경야뜨’ 프로젝트다. 주경야뜨는 낮에 일하고 밤에 뜨개질하는 모임으로, 멤버 김남희 씨가 바쁜 일상 속에 손을 움직이며 마주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만든, 뜨개 취미 공유모임이다. 2023년의 추운 겨울을 잘 흘려보내기 위해 시작했던 모임은 1년 동안 이어졌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무아뜨경’으로 재탄생했다.
“처음 제가 생각했던 뜨개모임은 뜨개질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개인의 작업도 공유하고 함께 뜨개하는 모임이었어요. 근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뜨개질을 배우기 위해 오시는 분이 많아 오히려 뜨개에 몰입할 시간이 부족해졌어요. 1년 정도 주경야뜨를 진행하며 운영방식의 지속성을 고민하게 되었고, 모임을 전면 개편해서 새로운 뜨개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함께 뜨개하던 4명의 청년은 ‘무아뜨경’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들은 2024년 양양군농촌활성화지원센터의 의기양양 두레 동아리 지원사업을 통해 무아뜨경을 시작했다. 올해도 2년 연속 동일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사업화 가능성까지 인정받아 지원금이 증액됐다. 좋아서 하는 모임에 실 구입비까지 얻을 수 있으니, 모임은 더욱 추진력을 얻었다.
뜨개로 엮인 사이, 4명의 멤버4명의 멤버
김남희, 김소의, 신소진, 심예슬 씨는 각기 다른 이유로 뜨개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무아뜨경으로 하나의 큰 그림을 엮어가고 있다. ‘지역살이’가 좋아 시작했던 일들로 번아웃을 겪었던 김남희 씨는 무아뜨경을 통해 지역살이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가고 있다.
“최근에 ‘지역살이’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어요.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오히려 이 단어가 저를 옭아매는 느낌이더라고요. 지역살이에 거부감까지 느낄 때쯤, 누군가 제게 단어가 오염되어서 그렇다’는 말을 해주더라고요. 요즘은 제가 처음 꿈꾸고, 앞으로 추구할 지역살이에 대해, 새롭게 정의 내리기 위해 무아뜨경 멤버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김소의 씨는 뜨개소품을 만드는 전문가이지만 혼자 작업하다보니 흥미가 떨어져 모임을 찾았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던 뜨개가 놀이 수단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중이다.
신소진 씨는 2022년 양양에 직장을 구하면서 서울에서 이주해왔다. 무아뜨경 기획 프로젝트 ‘뜨케이션’을 통해 모임에 합류한 그는 우연히 탄생한 해파리 모양의 뜨개소품에 ‘들뜬 해파리’라는 이름을 붙여 첫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일과 직장이 전부였던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확장된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쉬는 날 집에만 있는 게 싫어 새로운 거리를 찾다가,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해보았던 뜨개질이 생각나서 뜨케이션에 참여하게 되었죠.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하나씩 따라 하다보니 다시 뜨개질에 재미를 붙였어요. 무엇보다 뜨개를 핑계로 수다 떨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자체가 재미있어 모임에 깊숙이 참여하게 되었어요.
”겨울이 오면 우울해졌던 심예슬 씨는 추운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 김소의 씨를 따라 무아뜨경에 나왔다. 뜨개질이 처음이었던 그는 유튜브로 독학을 하고 멤버들에게 조언을 얻으며 뜨개의 세계에 빠져갔고,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아뜨경 멤버들 '자기소개'
△ 김남희
속초에서 ‘모래알’이라는 공간을 운영한다. 개개인이 가진 다양성이 서로의 목표를 가지고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 상생하기를 꿈꾸는 로컬문화플랫폼 모래알은 현재 재정비를 위해 휴업 중이다.(@sokcho_moraeal)
△ 김소의
양양에서 뜨개소품을 만드는 핸드메이드 브랜드 ‘양냥점빵’과 작은 숙소를 운영한다. 무아뜨경 모임의 회장을 맡았다.(@yang_nyang.0)
△ 신소진
직장 때문에 이주했다. 최근에는 털실로 버섯을 만들다 우연히 탄생한 해파리 모양으로 ‘들뜬 해파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floatingjellyfish_zoe)
△ 심예슬
양양에서 ‘라 마르 아트앤북스’라는 서점을 운영한다. 글쓰기 모임 ‘헤밍웨이 클럽’을 운영하고 있고, 독립출판사로서도 첫발을 내딛었다.(@lamar_artandbooks)
뜨개질은 한 코, 한 코를 더해갈수록 점, 선, 면의 순서로 완성되어 간다.
실패가 없는 뜨개, ‘푸르시오’
뜨개가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들을 뜨개의 길로 이끌었을까? 뜨개가 왜 좋냐는 질문에 이들은 “정말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저희끼리는 ‘푸르시오’라고 부르는데요. 뜨개는 실패가 없어요. 그냥 다시 풀고, 다시 뜨면 돼요.”
뜨개는 ‘실패가 없는 몰입’이다. 뜨고, 풀고, 또 뜨는 것을 반복해도 괜찮다. 하염없이 뜨다보면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처음에는 불신으로 시작했던 뜨개질이 한 코, 한 코를 더해갈수록 점, 선, 면의 순서로 완성되어 간다. 뜨개의 매력이다. 뜨개는 차분하고 정적인 활동 같지만, 실제로는 에너지가 가득한 열정적인 스포츠다. 뜨개하는 손은 전투적이고, 뜨개하는 뜨개인들의 마음은 승부욕으로 가득차 있다. 실과 바늘을 무기로 전투에 나선다.
무아뜨경은 뜨개모임이지만 뜨개질만 하는 것은 아니다. 속초와 양양에 이주하여 낯선 지역살이에 적응해나가는 4명의 이주민들은 서로에게 동네친구가 되어주었다. ‘오늘 뭐해?’ 하고 편하게 만나기도 하고, 학창시절로 돌아가 떡볶이 하나로 웃음보가 터지기도 한다. 때로는 쑥과 두릅을 함께 캐고, 쌈채소를 심어 나눈다. 서로의 ‘먹고사니즘’을 걱정하는 기분 좋은 참견들로 이들의 삶의 영역은 더욱 확장된다.
계곡서 뜨개질…뜨개영화 상영회 기획
무아뜨경 멤버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여름에 계곡에서 발 담그고 뜨개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으로 시작된 계곡 뜨개모임은 그들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양양 산골 계곡으로 이끌었고, 청년마을 지원사업의 도전 또한 우연한 계기로 발 빠르게 이루어졌다. 청년마을에 관심이 생겼고, 양양 마을의 유휴공간을 찾았고, 그 이후에는 이장님과 소통하고 서류를 쓰는 모든 과정이 쉼없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최종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준비과정은 멤버들을 돈독하게 만들었다. 뜨개와 지역살이에 대해 많은 고민과 대화를 나누었고, 이 멤버들과는 무엇을 해도 재미있고 알차겠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청년마을 도전을 통해 멤버들은 무아뜨경에 대해 하나의 통일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강원시네마실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뜨개를 하며 영화를 보는 뜨개영화상영회도 기획 중이다. 모임을 운영하며 새로운 문화들도 생겨났다. 예를 들면, 우리를 위한, 우리에 의한 언어가 생긴 것.
“우리 모임에서 만들어지고 통용되는 단어들이 생겨났어요. 예를 들면, ‘푸르시오’나 ‘얽힘의 관계’ 같은 것들요.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고 모두에게 이해된다는 지점이 가장 가치있고 재미있다 느꼈습니다. 이전에 했던 어떤 기획보다 생명력을 가진 기획이라고 느껴졌어요.”이들이 말하는 무아뜨경의 목적은 ‘건강한 얽힘’이다. ‘얽힘’이란 단어는 실타래가 이리저리 걸리고 꼬였을 때 사용하기 때문에 모임과 잘 맞아떨어지는 단어이기도 하다. 무아뜨경만의 언어로 쓰인 청년마을 지원사업의 서류 합격은 ‘우리의 언어’가 모두에게 통용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꾸며내지 않은 진심의 언어가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경험은 무아뜨경에 큰 힘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건강한 얽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연결’이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하지만. ‘얽힘’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잖아요. 단어가 주는 부정적 느낌 때문에 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저희의 생각은 달라요. 이리저리 걸려 풀리지 않는 ‘얽힘’의 관계는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는 ‘뜨개질’이라는 수단으로 건강한 얽힘을 경험했어요. 이런 얽힘들이 우리 사회 속에도 많이 생겨나면 좋겠어요.”
다음 코를 떠봐야 안다
“내가 잘 뜨고 있는가를 모를 때는 무조건 다음 코를 떠봐야 안다고 해요. 결국에는 한 코를 더 뜨는 것이 중요해요.”
앞길을 모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것뿐이라는 인생의 인사이트를 뜨개에서 얻는다. 출구 없는 뜨개의 무아지경(無我之境)으로 빠져들고 싶다면 무아뜨경을 두드려 보시길.
(무아뜨경 인스타그램 @muazigyeong_crochet)
정미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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