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광장’ 행사 기간, 순천 원도심 시민로에 조성된 콘텐츠 놀이터. 순천시는 차량 중심 공간을 시민 체험 공간으로 전환하며, 문화도시의 실험을 현장에서 구현하고 있다.
속초와 함께 지난해 말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지정된 전남 순천시는 ‘창작의 메카, 콘텐츠로 피어나는 문화도시’라는 비전을 내걸고 문화도시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순천은 애니메이션과 웹툰 산업 기반을 중심으로 문화도시 전략을 펼치며, 초기 관광 중심 도시에서 문화 콘텐츠를 축으로 한 도시 재구성에 나섰다. 순천은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라는 대표적 자산을 출발점으로 삼되, 이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과 디지털 콘텐츠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도시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가는 중이다. 속초 또한 설악산과 동해, 청초호와 영랑호 등 천혜의 자연 자원 위에 ‘컬리너리 속초’라는 음식 콘텐츠 전략을 더해 도시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하려 하고 있다. 두 도시 모두 기존의 상징적 자원을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닌, 이야기와 콘텐츠로 재해석하려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순천의 사례는 이처럼 기존 자원에 문화콘텐츠를 접목해 도시를 재해석하는 방식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다.
웹툰·애니메이션 창작 지원
순천은 국가정원이라는 기존 관광 자산에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체험형 콘텐츠를 구성했다. 지난 202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마친 뒤, 6개월간의 재정비를 통해 국가정원을 디지털 문화 콘텐츠 공간으로 리뉴얼했다. ‘우주인도 놀러오는 순천’이라는 주제로 정원의 서사를 확장하며, ‘꿈의 다리’는 UFO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된 ‘스페이스 브릿지’로, 남문광장은 미스터리서클 형태의 ‘스페이스 허브’로 탈바꿈했다. 이 가운데 중심 콘텐츠로 자리잡은 ‘시크릿 어드벤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우드베어’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몰입형 실감 콘텐츠 체험관으로, 4D 어트랙션, 미디어아트, 인터랙티브 공간, 포토존, 야외 조형물 등을 결합해 관람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순천시는 이를 통해 자연관광 중심의 국가정원을 문화체험형 콘텐츠로 확장하며, 문화도시 사업의 비전과 정원의 정체성을 콘텐츠로 연결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순천시는 글로벌 문화산업 거점 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웹툰과 애니메이션 분야 기업들이 지역 내에서 창작 활동을 활발히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며 산업 기반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 순천시 관계자는 “청년 콘텐츠 인재 양성 교육, 창작 캠프, 콘텐츠 아카데미, 레지던시 운영 등을 통해 지역 기반의 창작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며 “지역 고유 IP 발굴과 경진대회,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시민의 콘텐츠 향유 기회를 넓히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기업지원’, ‘인력양성’, ‘시민향유’ 3대 전략으로 구분해 연차별 개선과 보완을 거쳐 문화도시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수연 순천시 문화예술과 문화도시팀장은 “문화도시는 콘텐츠 산업 중심으로 생태, 관광, 정주, 경제, 복지 등 도시의 모든 요소를 연결해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며, “웹툰과 애니메이션 같은 고부가가치 콘텐츠 산업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청년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창작자는 자연 속에서 기획과 상상력을 확장하고, 시민은 콘텐츠가 삶과 도시의 활력을 바꾼다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며, “특히 원도심 콘텐츠 축제에서 창작자, 시민, 상인이 함께했던 구조는 문화도시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 예”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도시 사업이 정착되면 순천은 단순한 소비 도시를 넘어 창작과 유통의 중심지가 되고, 이는 글로벌 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만국가정원 동문과 서문을 잇는 ‘스페이스 브릿지’. 기존의 ‘꿈의 다리’를 우주선(UFO) 모양의 조형물로 리디자인해, ‘우주인도 놀러오는 순천’이라는 문화도시 콘셉트를 상징적으로 구현했다.
도심 전체를 축제 공간으로 전환
순천 문화도시의 전략은 원도심이라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 7~8일 이틀간 순천 원도심 시민로와 남문터광장 일원에서 열린 ‘주말의 광장’과 ‘원츠 순천’, 정책 축제 ‘알고잇슈’는 도심 전체를 하나의 축제 공간으로 전환한 대표 사례였다. ‘도심 해방로드’라는 콘셉트로 차량 중심 공간을 잔디와 무대로 전환하고, 주차장은 레이저태그 체험장과 캠핑형 휴식공간으로, 비어 있던 상가는 캐릭터 팝업스토어와 캐리커처 체험존, 윈도우 아트 전시장으로 꾸며졌다. 유명 크리에이터와 인기 가수 공연까지 이어진 이번 행사에는 4만8000여명이 방문하며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콘텐츠를 직접 향유하고 참여하는 도시 문화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축제 평가위원 전문가는 “순천시는 생태적 기반 위에 문화산업도시로 나아가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며, “특히 차가 다니는 도로를 잔디로 연출해 정원도시 순천의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드러냈고, 유휴 공간을 콘텐츠로 재구성한 점은 지역과의 유기적 연결을 이끈 혁신적 전략으로 평가할 만 하다”고 말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시는 상상력과 실행력으로 도시를 바꾸어 왔고, 전국에서도 순천을 주목하고 있다”며, “초기에는 인접 상인들과 일부 시민들의 차량 통제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예상보다 많은 젊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방문하며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순천만국가정원 내 애니메이션 콘텐츠 ‘우드베어’ 세계관을 기반으로 조성된 실감형 전시공간 ‘시크릿 어드벤처’. 관람객은 4D 어트랙션과 미디어아트를 통해 생태와 이야기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
문화도시 순천, 기반은 ‘창의성’
이곳 지역민들은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지역에 사람이 모이고 기업이 들어오며 먹고 사는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순천 시민들은 2013년과 2023년 두 번의 정원박람회를 치르며 “순천시가 하면 다르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고, 도시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해설사만 120여명이고, 생태·문화·기독교·철도 분야별 전문 해설이 가능한 순천은 시민 참여형 콘텐츠 플랫폼의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광양, 여수 등 인근지역에 비해 대규모 산업단지가 부족한 지역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창의성으로 돌파한 사례이기도 하다.
문화도시는 결국, 지역 고유자산을 기반으로 도시의 얼굴을 새로 짓는 일이다. 속초 역시 설악산, 동해, 석호 등 풍부한 자연 자산을 어떻게 지역 고유의 이야기로 전환하고, 콘텐츠로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모색 중이다. 음식문화라는 차별화된 자산이 단순한 체험을 넘어 창작 기반의 산업 생태계로 확장되기 위해선, 보다 구조적이고 서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순천은 콘텐츠를 도시 변화의 실질적 동력으로 삼아, 지속가능한 도시 전략과 원도심 재생,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구체적 성과로 연결해내고 있다. 시민과 창작자가 함께 도시를 만들어가는 순천의 사례는, 속초가 향후 문화도시 전략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설계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
※이 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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