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무덥던 어느 여름 날, 강원도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20여 년간 염원해 온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도 된다는 정부의 승인이 있은 날이다. 그날 오색 주민들은 과천정부청사 마당에서 본인과 함께 얼싸 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날 이후 강원도와 양양군은 케이블카 사업의 첫 삽을 뜨기 위하여 11개의 인·허가에 매달리며 백방으로 행정력을 집중해 왔다. 하지만 겨우 1년 반이 지난 지금, 문화재청 농간에 양양군민들의 가슴은 피멍이 들어가고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정치적 리더십이 사라진 틈을 타 행정의 신뢰를 저버리고 민심의 뜨거움을 외면하는 망령을 저질렀다. 그 이유가 가관이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 가고자 한다.
첫째, 산양은 지천이다. 유해조수로 지정할 수준이다. 1968년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하여 문화재로 보호해 왔다. 지금은 설악산과 태백산 등에 고루 서식하고 있고 등산객들도 수시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동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심지어 국도변은 물론 공사장 주변에서도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케이블카는 철탑도 아닌 원통형 지주를 불과 6개 놓는 것인데, 산양의 서식과 번식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으로 서천 개가 웃을 일이다. 그렇더라도 산양은 소중하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우리 도민들은 설악산과 산양을 지키기 위해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 참아왔다. 인간과 산양, 둘 중 누가 더 가치 있는가, 누가 희생해야 하는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둘이 서로 도와주는 친한 이웃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둘째, 걸어가는 등산객의 발자국이 외래식물종 유입을 촉진한다는 것인데,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에 방문객이 늘면서 외래식물종 유입이 확산돼 대책마련이 심각하다’고 한다. 사람이 직접 땅을 접촉하는 횟수가 급증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케이블카는 폐쇄형으로 지면을 밟을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에어샤워, 진동발판 등 탑승에서 출구까지 외래종 유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최첨단 시스템이기에 이번 부결사유로는 모순된다.
셋째, 바라만 봐도 훼손되는 바위덩어리는 없다. 4계절을 논하지 않더라도 가을철 탐방객의 절반 이상은 설악산의 비경을 감상하러 찾는다. 두 손에는 뾰족한 스틱을 잡고 산에 오른다. 인산인해라는 말이 무색치 않다. 탐방객들이 야간에 산에 올라 낮에 내려오는 것을 감안하면 하루 종일 북새통이다. 그 발길에 설악산의 바위덩어리도 서서히 흔들려 간다. 내버려 두었다가는 설악산도 조만간 한라산이나 성산 일출봉 꼴이 나고 말 것이다. 직접적 연동성이 없는 암괴원 등을 사유로 든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넷째, 고압철탑은 백두대간을 휘돌아 넘어 간다. 백두대간을 휘감고 돌아가는 고압 철탑과 전력이 경관을 훼손하고 산양의 서식과 번식에 영향을 준다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겠다. 고압철탑과 지주 몇 개 중 어느 것이 경관을 더 훼손하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특히 경관에 미치는 영향은 국내최고의 전문기관에서 수차례의 현장조사와 다양한 분석방법을 통하여 그 결과를 수용하였고, 국내에서 조사 및 보고된 사례가 없는 것도 최적의 분석자료를 이미 제출한 바 있다.
이번 문화재위원회의 부결 결정을 두고 ‘문화재청 농간, 초라해진 환경부’ 등 자조 섞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 정부 안에서 각 부처의 의견을 들어 의결한 정책결정을 뒤집어 상반된 판단을 하는 무능의 극치이다. 마치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 탄핵정국이라는 정치적 시류에 편승한 결정이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있다. 민심을 거스르는 정치는 영원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문화재위원회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부결결정은 재의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양심 있기를 바란다.
김진하
양양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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