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농부가 소는 돌보지 않고 시골장터를 기웃거리고 다니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한 동안 인기 있던 개그코너의 유행어이다. 기초단체장의 하루일정이 참으로 분주해 보인다. 지역행사에 얼굴을 보이느라 시간은 물론이고 체력적으로도 고단한 일상의 연속처럼 보인다. 어떤 날은 필자와도 여러 번 대면하게 된다. 그럴 때면 항상 반가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행사에 바빠서 ‘소는 누가 키우나?’ 걱정된다.
기초단체장인 시장과 군수뿐만 아니다. 도의원과 시의원도 마찬가지다. 선출직공무원들의 행사 참여에 대한 논란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역을 위해 일하도록 뽑혔으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초단체장 본연의 책무에 지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시정, 군정활동도 바쁜데 지역행사로 인하여 소홀해진다면 결국 그 폐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선출직공무원들은 왜 이렇게 많은 행사에 참여하는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행사주관단체의 초청이다. 단체의 위상을 높이려는 체면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참석에 응하지 않으면 시선이 곱지 않다. 불참한 선출직을 향해 배가 부르니, 무시하느니 비난이 쏟아진다. 한걸음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체면문화이다. 체면이 죽어야 지역이 산다.
둘째는 선출직공무원의 자발적 참여이다. 근본적 이유는 차기선거를 의식한 정략적 발걸음이다. 앞의 경우보다 훨씬 고질적이다. 시정이나 의정활동보다 자기입지강화에 시간을 사용한다. C지자체 통계결과 1년에 1천회, 하루 3회 참여하였다. 지역발전을 위한 개선책이나 발전적 구상은 뒷전이고, 법규개선이나 조례발의에도 소홀하다. 왜냐하면 다른 것에 관심을 갖게 되면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회자는 선출직을 소개하는 순서시간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참석자 대부분이 이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의례적인 축사를 마치고 나면 점심오찬은 그렇다하더라도 저녁만찬에는 음주가 빠짐없이 자연스럽게 뒤를 잇는다. 권주를 위해 선출직은 술병을 들고 좌중을 순회한다. B형 간염 때문에 꺼려했던 술잔 돌리지 않기 계몽운동도 기억 속에 사라진지 오래다. 혹시라도 빠뜨리고 지나가면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수십 명의 참석자와 대작을 해야 한다. 시늉만 낼 수 없는 우리 음주문화이니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체력을 자랑해도 내일의 의정활동 감당이 부담될 것이다. 필자와 같은 기독교인은 가장 힘든 시간이다. “위하여” 건배사가 서너 번은 반복된다. 맹물을 잔에 담아 함께 외친다. 들자하니 드는 것은 필자가 일등이다. 생수 잔을 머리 위까지 치켜 올린다.
이제 그만 기초단체장을 소소한 행사에서 놓아드려야 한다. 언제까지 동네행사까지 왕림하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참석 못했다고 다음 선거 때 보자는 식의 협박을 할 것인가. 선거기간 열변을 토하면서 일류 시군으로 만들겠다던 공약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행사에서 자유롭게 풀어드려야 한다. 얼굴이 아닌 실적으로 평가하는 높은 주민수준을 보여야 한다.
대학 총장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대학은 비전이 없다. 대학경쟁력을 위해 비즈니스 총장이 되어야 하듯이, 시장과 군수는 ‘출장 중’이어야 한다. 휴양관광자원을 파는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비즈니스맨 기초단체장이 되어야 한다. 외국의 경쟁력 있는 지자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정책결정이 아닌 행정결재업무는 부시장과 부군수에게 일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단체장은 법정기념행사, 국제행사, 전국규모행사와 같은 행사참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표하고 지역민은 협조해야 한다. 기초단체장은 시청과 군청에 있으면 안 된다. 지자체를 위해 지자체를 떠나야 지자체가 산다.
최철재
경동대 교수·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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