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양팔저울을 사용하여 무게를 측정하고, 물체의 무게와 거리의 관계를 통한 수평잡기의 원리를 가르친 기억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학교재정이 열악해서 과학실 실험기구들을 사용하려고 준비하다 보면, 당장 쓸 수 있는 것 보다 쓰지 못할 기구들이 더 많았다. 양팔저울이라고 예외가 있겠는가. 과학실에서 가져온 10개의 양팔저울 중 영점이 맞는 저울은 한 두 개가 고작이라 실험 전에 아이들과 영점부터 맞추는 게 수업의 시작이었다. 작은 찰흙덩어리를 사용하기도 하고, 클립을 이용하여 영점을 잡고 나서야 물체의 무게를 재고, 수평을 잡는 실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양팔저울의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원리는 세 가지였다.
첫째, 물체의 무게와 받침점으로부터의 거리를 곱한 값이 같으면 두 물체는 수평이 된다.
둘째, 물체의 무게가 같은 경우, 두 물체의 수평을 잡기 위해서는 두 물체를 받침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놓으면 된다.
셋째, 물체의 무게가 다른 경우, 두 물체의 수평을 잡기 위해서는 무거운 물체를 가벼운 물체보다 받침점에 더 가까이 놓으면 된다.
과학시간에 하는 실험은 명쾌했다. 대부분의 실험이 원리를 따르면 해답이 나왔다. 그런데 세상살이는 그렇지가 않다. 그 이유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는 사회현상들은 그 두 학문의 성격상의 차이보다도,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무게중심을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두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요사이 텔레비전의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는 짜증이 나면서 한편으론 두렵다. 국제적으로는 북한의 핵위협에 따른 사드배치로 벌어지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갈등도, 미국의 트럼프 발 미국 제일주의에 따른 다양한 국제질서의 재편에 따른 외교적 압박도, 일본의 틈새를 파고드는 기회주의적인 외교적 무례함도 우리는 그저 손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말잔치만 풍성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국내적 상황이다. 그것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상황들이 중심에서 너무 멀어진 양극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촛불을 들러 광화문 광장으로 가든, 태극기를 들러 대한문 앞으로 가든,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선택의 문제이다. 세상살이가 언제나 그러하듯 양과 음이 있고, 수많은 생각의 차이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목청 높여 외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선택의 과정을 거쳐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해서 다시 머리띠를 두르고 더 큰 목소리를 내서는 곤란하다. 내 선택과 다른 결과가 나와도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정치적인 상황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리, 우리의 일상생활 모든 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자신의 머리에 차가운 얼음물 한바가지를 부어야 할 때이다. 조금은 냉철해져야 한다. 어떤 일의 결과가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나올 때, 진심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서 승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우리는 그 현상을 사회과학적 원리와 함께 자연과학적 원리도 같이 생각해보는 통섭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 양팔저울의 수평을 잡듯 클립 하나를 더 얹어도 보고, 더 올라간 클립들은 하나씩 덜어내어 마음의 중심을 먼저 잡은 후, 내 생각의 분동들을 하나씩 올려놓고 거리를 조정할 때이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리라 믿는다. 풀뿌리들의 회복탄력성을 믿는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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