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버스에서 내린 여행객에게 발견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오는 방문객은 그 확률이 조금 더 높을 것 같다. 낯선 골목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골목 입구, 80년대를 어렵사리 버티고 있는 ‘고구마쌀집’의 간판이 반갑다면 ‘완벽한 날들’이라는 기표에서 정서적 공감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 여행자라면 수복탑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닷내음까지 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하필 과거가 머물러 있는 골목에 ‘완벽한 날들’이라니. 개발 광풍이 부는 속초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묘하게 난감해졌다.
손님들의 자발적 홍보 큰 힘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뒤편에 자리잡은 게스트하우스 겸 서점인 ‘완벽한 날들’은 이제 막 출발한 청춘의 따뜻한 고집이 느껴지는 곳이다. 마침 그곳을 찾았을 때는 3명의 운영자가 책꽂이의 서적을 재배치하는 중이었다. 서점의 공간이 작은 만큼 새로움을 주기 위한 조치 중 하나이다.
책꽂이 사이마다 흰종이가 드문드문 붙어있다. 운영자가 고른 책의 의미를 담은 문구이다. 예컨대 “정치에 관심은 갖고 있지만 도대체 정치가 정확히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우리나라 정치는 왜 이 모양인지 너무나 궁금한 이들이 차근차근 읽으면 좋은 책들”이라는 식이다. 장미대선이 가까운 만큼 정치에 대한 책을 모아놓을 계획인가 보다. 발 빠른 선택이지만 속초에서 이런 취향이 통할까 걱정이 앞선다.
지난 1월에 문을 열었으니 3개월이 지났다. 소위 안면장사도 끝날 즈음인 셈이다. 최윤복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의 예상과 똑같은 게 없다고 토로한다. 특히, 4월이 힘들었다. 관광 비수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의 손님이 줄었고, 서점의 큐레이션은 도서구매와 연결되지 못했다. 그래도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온 손님들의 자발적 홍보가 큰 힘이 된다. 다른 곳보다 숙박비가 조금 비싸지만 떠나고 머무는 공간의 쾌적함을 위해 차별화시킨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다. 도서배치와 선정 등 서점 운영의 방식도 매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즐겁게 고민하고 있다. 이제 막 출발선에서 발을 뗀 청춘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책 중심의 복합문화공간 꿈 꿔
최윤복 대표는 속초출신이다. NGO에서 일하다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꾸었다. 책을 매개로 할 수 있는 일을 꿈꾸었는데, 부동산에서 소개해 준 지금의 이 공간을 보자 ‘게스트 하우스’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지난해 말 아내의 후배까지 합류하여 2층은 총 9실의 게스트하우스로, 1층은 서점과 카페가 함께하는 북스테이 컨셉의 공간으로 탄생했다. 여행자에게는 또 다른 속초의 매력이 되고, 속초시민에게는 다양한 소통이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그동안 월 1회 이상의 문화이벤트도 펼쳤다. 포크뮤지션 권나무 초청 콘서트나 공감 스토리텔러 박상미 북콘서트가 대표적이다. 남는 장사는 아니지만 사회적 자본은 어느 정도 쌓였다. 시, 소설, 에세이 등 여행자들이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책부터 페미니즘, 노동, 인권, 생명존중 등 운영자의 철학이 보이는 북큐레이션도 함께 한다. 문턱 낮은 책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을 꿈꾸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글쓰기와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가정주부나 군인, 일반 직장인 등 다양한 이들이 책을 매개로 만나게 되었다. 각각 6명이 함께 했다. 많지는 않지만 적은 숫자도 아니다. 독서모임의 경우 <랩걸>(글 호프, 역자 김희정, 알마)과 함께 최명희 작가의 <혼불> 읽기를 선택했다. 혼자서는 절대 끝까지 읽을 것 같지 않는 장편소설을 함께 읽어보자는 취지다.
최 대표의 선한 인상 위로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 사치에가 겹쳐졌다. 오니기리와 시나몬롤 등 사치에의 맛깔스러운 음식은 낯선 고객에게 일상의 위로이자 소박한 삶에 대한 예찬이었다. 카모메의 뜻은 ‘갈매기’라고 한다. 리처드 버크는 <갈매기의 꿈>에서 의존보다는 자유를, 기존 질서에 대한 순응보다는 진정한 삶을 향한 날개짓을 보았다. 북스테이 공간 ‘완벽한 날들’의 책과 한잔의 커피 역시 일상의 응원과 지지를 위한 공감이자 신자유주의의 질서를 벗어나기 위한 날개짓인지 모르겠다. 서툰 출발이지만 낙관으로 실천하는 청춘들의 노력이 오래도록 이어지기 바란다. 속초는 이런 공간과 청춘의 꿈이 더욱 많아야 한다. 그 시작은 이웃의 응원과 지지이다.
김인섭 전문기자(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최윤복 대표는 ‘완벽한 날들’이 책을 매개로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완벽한 날들’은 작은 규모의 서점이기 때문에 사회과학과 인문학 중심의 북큐레이션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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