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속초등대가 있는 영금정 뒷산에서 시작해 낙타등처럼 높고 낮은 산등성이가 지금의 공설운동장 앞산을 지나 금호동 쪽으로 길게 구불구불 뻗어 내리며 소나무 숲으로 산맥을 이뤘고 이 산등성이는 교동과 만천동, 도리원으로 이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이 산등성이에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살림살이는 궁핍했지만 산동네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설악산 조망권은 최고였다. 재해위험지구라는 이름아래 마사토 옹벽들이 하나둘씩 허물어졌고 도로 개통 등 개발로 보따리를 싸서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1964년 속초 전경<1>
<사진1>에서 보듯이 동해북부선 철길이 7번국도(지금은 동해대로로 명칭이 변경됨)와 같은 경로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당시 청초천 하류에 집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초천의 하천폭도 육안으로 볼 때 상당히 넓었다. 유량도 풍부했음을 청초호와 만나는 하류가 증명하고 있다. 쌍다리가 보이고 끊어진 철길에 청초천 교각들이 서있다. 철길 둑방을 따라 집들이 즐비하고 이 둑방이 지금은 조양로와 수복로로 개설돼 남북을 교통하고 있다.
쌍다리의 역사는 아쉽게도 문헌상으론 확인할 방도가 없다. 1936년생인 부월리 토박이 김상영 어르신의 증언에 따르면 해방과 동시에 속초는 북한정부의 통치를 받게 되는데 김상영 어르신이 10살 때인 1946년쯤 부월리와 온정리, 논산리, 청대리 마을사람들을 노역에 투입해 시멘트로 청초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노임 한 푼 받지 못하고 청초교를 완공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전쟁 땐 유엔군이 후퇴하면서 TNT를 터뜨려 청초교량을 파괴하려고 시도했지만 교각 일부만 떨어져나갔다고 현장에서 본 기억을 떠올렸다.
1963년 시 승격 후 처음 발행한 <속초시통계연보 1호>엔 청초교 제원으로 길이 8m에 폭 3m×2개 6m라고 기록돼있다. 쌍다리는 원 다리와 다른 다리의 높이가 달랐다. 이후 1997년 전국 일제 교량점검에서 청초교가 위험군에 들어 하나의 다리로 개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옛 속초중학교 뒤에 아카시아나무가 빽빽이 둘러있어 요즘같이 5월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면서 아카시아꽃을 따먹는 재미를 만끽했다.
속초초등학교 뒤에서 속초여자중학교로 가려면 농로를 따라 걸었다. 어느 순간 논이 노가리촌으로 바뀌고 도로가 뚫렸다. 번영로이다.
동해안의 모든 호수가 그러하듯 청초호도 석호이다. 본디 바다였는데, 모래톱으로 막혀 호수가 된 것이다. 그 모래톱 위에 형성된 마을이 청호동이다. 원래 이 모래톱은 길로 쓰였다. 부영아파트 앞을 지나는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중앙동과 청호동을 바로 잇는 이 길이 속초의 주 도로였던 것이다. 예전에는 가랑이 끝만 약간 걷어 올리면 건너다닐 수 있었다. 길로써의 기능은 여전하되 약간의 번거로움이 따르게 된 것이다. 당초 부월리3구(청호동)와 속진(중앙동)이 맞닿아 있어 트럭 한 대와 우마차 한두 대를 같이 실을만한 정도의 갯배가 읍내를 관통하는 7번 국도였다.
■1964년 속초 전경<2>
<사진2>를 보면 우렁골에서 속초역 기차소리가 들렸다는 고 김종록 속초문화원장의 증언이 실감난다. 우렁골 길 따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속초역 모습이 보인다. 수복탑과 흰 건물의 속초경찰서가 선명히 보인다. 속초경찰서는 1963년 1월 시 승격 후 그 해 10월 26일 동명동에 자리 잡았다. 수복탑 앞 백사장이 장관이다. 80년대 초까지도 군부대 초소와 함께 백사장이 남았는데 그 후 매립됐다. 멀리 동명동천주교회와 속초감리교회가 보이고 속초등대와 영금정, 오리바위도 선명하다. 시청 앞 현대극장 건물이 보이고 시청 뒤 사이렌 산동네에 집들이 빽빽하다. 금호동 노가리촌 산동네에도 집들이 오밀조밀 들어서있다.
■1980년대 초 속초 전경
<사진3>에서 보면 속초초등학교 후문에서 속초여자중학교에 이르는 번영로가 막 개설된 때 모습이다. 속초여중 맞은편에 속초여자고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교정이 아담한 게 잘 가꿔져 있었는데 1984년 12월 15일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 속초여고는 속초여자종합고등학교에서 1973년 9월 속초여자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됐다. 인문반과 상과반이 공존하다가 순수 인문계 고등학교가 되었다.
설악중학교 옆 주공2차 아파트 단지가 건축되기 이전이다. 연풍사에 이르는 구릉에 서울대명1차를 비롯해 많은 공동주택들이 들어선 지금과는 천양지차다. 속초고등학교와 교동초등학교가 산 하나를 가운데 두고 위치해 있다. 속초고등학교 교문이 2개인 것이 보인다. 정문은 비포장도로에서 내리막길 초입에 있었고 지금의 동설악빌라 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등하교하기도 했다. 지금은 현대1차아파트 등 대단위 공동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이 당시엔 공동묘지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속초고등학교 교정과 교동초등학교 가운데 우뚝 버티고 있는 산에 대한 추억 또한 새삼스럽다. 방공호를 파 민방공훈련이 있으면 방공호로 들어가곤 했다. 상급자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면 산을 넘어 교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축구경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이 산을 허물어 속초중학교 교정이 자리했고 속초고등학교도 1988년 11월 장사동으로 이전, 바로 그 자리에 속초양양교육지원청 건물이 들어섰다.
■최근 속초시 전경
<사진4>최근 청대산에서 바라본 속초시의 전경이다. 고층건물이 즐비하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현대1차아파트, 동부아파트, 부영아파트 등 아파트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15층 높이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몇 년 새 28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들이 앞 다퉈 들어서고 있다. 사진 왼쪽 상단에 완공을 앞둔 28층 높이의 영랑호 이편한세상아파트가 보인다.
속초시의 미래는 장밋빛일까? 협소한 면적으로 개발은 하늘로만 솟구친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청정한 환경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속초가‘물 들어올 때 배 띄운다’고 각종 건축과 사업 인허가로 넘쳐난다. 이미 공동주택 28층 스카이라인이 무너졌고 상업지구 35층 건축 이야기도 들린다. 인구 8만1,000여명인 소도시, 속초에 불과 2년여만에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분양형 호텔이 고층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텔은 국제관광지에 걸맞은 미관은 커녕 컨벤션센터와 편의시설은 안중에도 없이 성냥갑처럼 객실만 빽빽하게 채워 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핵심공약 사업으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제시했다. 이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은 기존 동네를 완전히 철거하는 도시정비사업과 달리 역사, 문화, 환경, 생태 등을 보존하면서 노후 주거환경을 새로운 주거지로 조성하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 제1순위 사업이었던 정보화사업 유치에 속초시가 실패해 제2순위 사업인 환경사업에 전력을 투구해 청초호, 영랑호 준설, 신수로 개통 등 2,000여억원에 달하는 중앙정부 예산을 확보한 전례처럼 도시재생을 통해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이들이 기존 정주지역에서 쫓겨나가는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도 도시관리계획의 중요한 한 축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수영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사진 1> 미군 출신 바이런 디킨슨씨가 청대산 상공에서 항공 촬영한 1964년 속초 전경.
<사진 2> 미군 출신 바이런 디킨슨씨가 공설운동장 상공에서 항공 촬영한 1964년 속초 전경.
<사진 3> 1980년대 초 만리공원 상공에서 항공 촬영한 속초 전경.
<사진 4> 지난 14일 청대산 정상에서 촬영한 속초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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