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지역에는 250∼7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마을의 수호신 노거수가 모두 20그루에 이른다. 고성군은 이중 13그루를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해 오고 있으며, 마을에서도 노거수를 마을 수호신처럼 정성껏 보살피고 있다.
한자리에서 수백년 세월을 버텨온 노거수는 대부분 한 마을의 전설과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신목’ 또는 ‘당산목’으로 존엄성을 지니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신성시 모시는 노거수에 매년 풍년과 대사를 기원하는 제를 올려왔지만, 근래에는 이런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고성군청 입구 은행나무
고성에서 가장 대표적 보호수종인 노거수는 간성읍 하리 현 고성군청 입구에 위치한 은행나무(수은행나무, 군목)다. 아름드리 고목인 이 은행나무는 군청 언덕에서 700년 넘게 지역을 묵묵히 지키며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나무 둘레 7.5m, 높이 25m로 지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군청 은행나무의 부인격인 암은행나무가 있다. 인근 간성읍 봉호1리 고 윤병준 씨댁 가옥 옆에 있는 은행나무로 높이 20m, 둘레 5.6m에 수령은 약 460년에 달한다. 부인인 김옥순(86) 할머니에 따르면 군청 은행나무의 첫 번째 부인격인 암은행나무가 2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사라져 이 봉호리 암은행나무를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았고, 매년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 나무는 과거부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낙들이 치성을 드리며 신성시해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로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김 할머니는 매년 가을이면 이 암은행나무에서 3포대(포대당 60kg) 정도의 은행을 수확해 마을 주민들과 나누고 있다.
■토성 백촌리 팽나무
토성면 백촌리 마을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끝자락에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는 고목인 팽나무를 만날 수 있다.
수령 520년이라는 긴 세월의 시간을 말해 주듯 이 나무는 외과수술을 받은 흔적 등 외관상 많은 상처를 갖고 있다. 현재 이 팽나무는 수술에도 내부가 지속적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어 강풍이 불때마다 나뭇가지들이 부러져나가 고사될 위기에 놓여 있다.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팽도’ 또는 ‘팽구나무’라고 부르며 1400년대에 경주 김씨가 이 마을에 이주해와 심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팽나무를 심었다는 경주 김씨의 17대손인 백촌리 김정한 할아버지(94, 사진)는 과거 이 마을에는 성이 있었고 동문과 서문 주위에 팽나무 3그루가 자랐지만, 세월의 풍파 속에 두 그루는 바람에 부러져 없어지고 지금은 이 나무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팽나무는 전국적으로 관서(관청)가 있던 곳에서 자라 예전에는 백촌마을에도 관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주변에는 당시 성을 쌓았던 많은 돌과 흙더미, 성문에 썼던 주춧돌 등이 남아 있다.
주민들은 60년 전만 해도 이 나무 밑에서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며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은 이 나무 밑에서 담배를 피우면 나무가 노해 마을에 재앙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담배를 절대 피우지 못하도록 하고 있있다.
■그 밖의 보호수
거진읍 송포리 김춘애씨댁 가옥 인근에 위치한 소나무(보호수)는 둘레 5.5m, 높이 24m로 조선말부터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목 역할을 해왔으며, 산수가 좋아 휴식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현내면 죽정리 최동하씨댁 인근에 위치한 수령 250년의 소나무는 옛날부터 화진포 호수의 침수를 방지해 준다는 수목으로 주민들이 풍년을 기원하곤 했다.
죽왕면 구성리(2그루)와 간성읍 하리(2그루) 상수리나무는 수령이 각각 420년, 300년으로 추정된다. 성황당 주변에 있으며 마을주민들은 매년 음력 1월 마을의 무사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이밖에 고성의 보호수로 거진 용하리 소나무(수령 600년)와 거진 냉천리 팽나무(수령 350년), 죽왕 구성리 소나무(수령 420년)와 음나무(350년)가 있다.
보호수는 아니지만 노거수로는 천진 매자나무(수령 5백년), 원암 참나무(수령 3백년), 산학 느티나무(수령 3백년), 봉평 소나무(수령 4백50년), 산학 소나무(수령 4백20년), 화포 소나무(수령 3백10), 운봉 소나무(수령 4백년) 등이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다.
■운봉·인흥 노송군락지
5개 읍·면 23개리 87곳의 노송군락지에서 자라는 6만4,676본의 소나무도 100년 이상 마을에서 관리해 오고 있다.
군락지 노송들은 풍수지리에 의해 방풍림이나 방조림으로 조성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사연도 간직하고 있다.
토성면 운봉과 인흥 노송군락지는 수령이 100년 남짓하지만 마을의 흥망성쇠를 좌우해 마을의 경계표시와 함께 마을 수호림으로 귀중히 여겨지고 있다.
방풍림으로 조성된 이 노송군락지는 풍수지리에 능통한 고승의 말을 듣고 주민들이 심은 것으로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화목으로 베어가려고 한 것을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막아 지켰다고 전해진다.
이용수 기자 yong@soraknews.co.kr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기원해 주는 토성 백촌의 팽나무.
마을의 흥망성쇠를 좌우해 마을의 경계표시와 함께 마을 수호림으로 보호받고 있는 운봉 노송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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