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통한의 절규 어찌 잊으랴, 먼저가신 전우들의 넋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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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7년06월12일 11시31분 ]

작전 6일째(주월백마, 00연대5중대). 종료 하루 전인 1968년 9월 22일 밤 9시. 대지를 삼킬듯 빗줄기가 장대비가 된 칠흑의 밤. 초조하고 불안해 있을 군심(軍心)을 자극하는 적의기습공격으로 전장은 순간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유월남(구) 카노아성 반란군 베트공의 요새. 324무명고지. 적은 어둠과 장대비 그리고 지형지물을 장악하고 아군의 동선을 확보, 아측 3각 매복조에 집중 공격해 공포와 두려움을 유발함으로써 아군의 전투의지를 위축시켰다. 조명탄이 정글틈새를 비집고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총성과 비명, 화약냄새로 아수라장이 된 고지 정상은 허 찔린 아군의 보복의지 결여로 초기에 적을 제압하지 못해 불길한 전투환경을 예고하고 있었다.
팀장인 선임하사는 반복된 교육훈련에서 터득한 전술전기를 실전에서 외면하는 등 리더로서의 기본책무를 소홀히 하였으며 숙련된 ‘기도비닉’을 통해 적을 기만하는 것이 매복의 핵심전술임에도 ‘매뉴얼’을 무시하였으며, 2명의 분대장은 선임하사의 지휘 오류에 단호히 조언 선도해야 함에도 이를 방조하는 등 자만과 방심이 패전의 동인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자료 : 필자 참전 작전일지)
산새들이 날개를 펼 새벽의 전장은 태풍이 지난 후처럼 모두가 정지된 적막 그대로였다. 멀리 겹겹의 형제 봉우리들은 따이한을 비웃듯 내려다보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324고지를 돌아 은빛을 토해내며 반란군 들녘을 살찌게 한다. 태산 같은 통한의 기억으로 남을 324고지는 본래의 평화로운 질서로 돌아간 자연 그대로이나, 따이한의 가슴 속에는 분루의 순간들만이 기억을 채워가고 있었다.
살아 돌아가리라 다짐하며 연인을 함께 만나자던 생전의 전우모습에 눈시울을 적시며 가족을 생각한다. 많은 시간 가족이 안고 갈 파도처럼 밀어닥칠 진한 슬픔과 그리움을 어떻게 삭이며 살아갈 것인지 가슴이 시리다. “아들이 없는 사람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른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기약 없는 전쟁에 아들을 보내고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부모의 간절한 기도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위축된 사기를 서둘러 다독이고 추스른다. 전우들은 동료 잃은 상실감에 죄인이 된 것처럼 말이 없다. 하지만 지나친 패배의식에 집착해 야전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계가 극찬한 신화창조의 명예를 지키고 오늘의 아픈 기억을 통해 설욕을 다짐한 숨진 전우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 한쪽을 남겨두고 철수해야하는 통한의 고지는 전쟁이 할퀴고 간 참화의 흔적들만 도처에 뒹굴고 저주받은 괴물이 된 채 우리를 보낸다. 구천을 배회할 원혼들이시여! 우리가 이 악몽의 시간들을 기억해야할 이유는 패배에 대한 교훈을 각인하고 칠흑의 밤, 생사의 갈림길에서 위생병을 부르며 살아야 한다고 울부짖던 전우들의 마지막 통한의 절규를 잊을 수가 없으며 넋을 기리고 명복을 빌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령들이시여! 미망인 유족들의 삶에 그늘이 없도록 국민적 관심과 격려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을 적시하면서 그대들의 조국 대한민국에 총화의 지혜를 주시고 시급하고 절실한 자주국방 구현과 국력신장을 위한 안목과 혜안을 주소서.
이역만리 낯선 산하 그대들의 위대한 충정 결코 헛되지 않으리. 비록 곁을 떠났지만 그대들의 넋은 조국과 영원히 함께하리라.
삼가 머리숙여 명복을 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임동회
전우신문 속초 주재기자,
속초시공정사회시민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