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은 속초에 각별한 의미다. 한국전쟁의 산물 실향민의 삶이 조명되기 때문이다. 이산의 아픔과 전쟁의 반성, 평화의 갈망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은 속초 고유의 문화를 만들었다. 속칭 아바이마을이라고 불리는 청호동은 실향민 문화가 시간의 지층에서 축적된 장소로 각광받는다. 6월에 만나는 2개의 축제, ‘갯배예술제’(주관 속초민예총)와 ‘실향민문화축제’(주관 속초축제위원회)는 올해 실향민문화를 다르게 만날 수 있는 2개의 전시회를 <아트플랫폼 갯배>에서 선보였다.
기억의 고집 느껴지는 흑백사진
엄상빈(사진) 작가는 1983년부터 현재까지 35년간 아바이마을 실향민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흑과 백, 두 가지 색으로 만나는 아바이마을의 풍경은 시간의 깊이 위에 꾹꾹 눌러쓴 듯한 기억의 고집이 느껴진다. 포스터 표지 사진으로 사용한 <1986년 속초>를 보자. 어느 눈 오는 겨울, 우산을 쓰고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는 마을주민의 모습 뒤로 여남은 사람이 눈 덮인 갯배를 타고 아바이마을로 건너가고 있다. 그 너머 얕은 지붕이 촘촘히 박혀있는 마을모습은 신산스런 타향살이를 떠올리게 한다. 아바이마을은 따뜻하면서도 아득한 정경으로 남았다.
엄상빈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오랫동안 찍었던 아바이마을 작품을 몇 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흑백은염사진 40점이 전시된다.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작품이지만 변화의 흔적보다 내밀한 정서의 끈이 연결된다. 흑백사진이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사람과 풍경 너머의 내면을 고집스럽게 담기 위한 작가정신이 아닐까? 미술평론가 정진국은 “작가가 클로즈업으로 찍은 주민들의 초상은 그 얼굴마다 ‘간난(艱難)의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의 위엄이 묻어난다”고 설명한다. 시대가 위로하지 못한 분단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 마을주민의 모습을 작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전시회를 했지만 사진을 찍은 현장인 아바이마을에서 전시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진 속 주인공들께서 전시장을 찾을 수 있어서 설렙니다. 실향민촌 아바이마을에서 고향 얘기를 하기는 죄스럽지만, ‘제 사진의 고향’은 바로 아바이마을입니다. 사진인생 40여 년 중 가장 많이 발품을 판 곳이 바로 아바이마을이기에 14번째의 개인전 같지 않고 첫 번째 개인전 같은 기분입니다. 우리 다함께 통일 염원을 빌어 보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작가는 전시회를 앞둔 심정을 이렇게 전해왔다.
전시회는 ‘아트플랫폼 갯배’ 2층에서 오는 7월 31일까지 한다.
엄상빈 작가의 아바이마을 사람들 사진전 포스터 표지 사진인 ‘1986년 속초’.
순대에 돼지피 대신 오징어먹물
속초는 미식기행의 도시가 되었다. 다양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싱싱한 수산물, 냉면이나 오징어순대같은 실향음식이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지난 17일부터 ‘아트플랫폼 갯배’ 1층에서 전시되는 ‘실향음식 활용 퓨전음식 개발 및 전시회’는 독특한 음식전시회다. 실향음식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오징어순대와 아바이순대가 다양한 색깔의 음식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속초문화원(원장 김계남)이 주최한 이 전시회의 화두는 ‘세계화’이다. 실향의 슬픔 속에서 삶의 열정으로 태어난 속초 음식문화가 평창동계올림픽과 동서고속화철도 등의 변화 속에서 세계를 향한 음식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접근한 것이다.
설악음식문화연구소(소장 이오준, 경동대 외식사업경영학과 교수, 사진)가 개발한 요리는 ‘글로컬 음식브랜드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순대와 달리 세계인이 선호하는 식재료를 사용하여 맛의 차별화를 두었다. 당면이나 찹쌀대신 리조또라는 쌀요리로 대체하였고 돼지피 대신 오징어먹물과 다양한 치즈를 사용하여 음식의 질을 높였다고 한다. 음식명도 새롭다. ‘전통아바이 감자순대와 치즈크림소스’, ‘치즈리조또로 속을 채운 퓨전아바이아몬드순대와 와인그레비소스’ 등 6종의 순대요리를 개발했다.
김계남 원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개발한 6종 순대의 레시피를 향후 대중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노인일자리 등의 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실제음식에 젤라틴을 입혀 보존성과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오는 24일까지 전시할 계획이지만 보존성이 높으면 더 연장할 계획이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레드와인 소스를 곁들인 정통감자순대.
크림치즈 소스를 곁들인 퓨전 오징어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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