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속초로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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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7년06월26일 10시23분 ]

서울과 속초간의 고속화철도사업이 추진된다는 소식 덕인지 속초지역에 대형 건축물들이 세워진다고 한다. 현재 속초지역에서 건립중이거나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대형 건축물들은 공동주택이 11개 단지, 호텔 등 숙박시설이 12개 시설이라고 한다. 만약 고속철 때문에 이 같은 사업이 이뤄진다면 저주의 교통수단이 되는 셈이다. 빠른 것은 늦은 것에 비해 편리한 점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빠르면 편하고 늦으면 불편하다는 도식은 맞지 않는다. 빨리 사망하면 좋고 늦게 사망하면 나쁘다는 도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속초는 서울 동쪽에서 버스로 10여시간 걸리던 거리에 있던 작은 도시였다. 먼지와 자갈이 깔린 긴 국도를 지나야 이를 수 있는 도시였다. 그 시대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불편하긴 해도 불행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속초의 옛 모습은 지금도 우리의 노스탈쟈를 자극하며 시정에 잠기게 한다. 60년대 속초는 영랑동에서 동명동으로 내려서면 동해의 갯바위를 때리고 부서진 파도가 버스바퀴에 덤벼들었다. 대포고개를 넘은 버스는 넓게 펼쳐진 호수 위로 온갖 새들이 노닐고 있는 갯벌과 갈대와 물위에 부상해 있는 아득히 자리 잡고 있는 다감한 도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 이 지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숨어있었던가. 속초는 물의 도시였다. 베니스가 이렇게 자연적인 도시였던가. 환상의 삶의 터전이었던가. 꿈의 마을이었던가. 현실의 삶이 고달파도, 변변한 공장이 없어도 속초시민은 인내하며 살았다. 위안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초호가 매립되고 동명항과 대포항의 갯바위가 사라진 그 자리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흉측한 자화상만 남아 있다. 현재 속초인구는 8만명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속초라는 공간이 수용할 수 있는 인구는 10여만명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속초가 계획하고 있는 11개의 대형 건물은 아파트와 연립주택 또는 호텔 숙박시설이라고 한다. 30층 정도의 건물은 괴물이다. 계획대로라면 속초에 동시에 12개의 괴물이 날뛰게 되는 셈이다. 이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수요자에게 분양되고 호텔이 투숙객에게 활용된다면 속초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행정당국과 건축주들의 예상대로 된 성공사례가 있었던가.
수도권에서 또는 자신이 수도권인 인천의 경우를 살펴보자. 인천 송도 신도시로 가보라. 하늘 높이 치솟은 철과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과 그 사이를 휘감아 돌고 있는 흉흉한 바람과 쓸쓸한 잡초만 자라고 있는 마천루 신도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유령의 도시이다. 금세기초 시인 T.S엘리엇은 세계적 도시, 런던 모습 속에서 타락하고 쇠락한 도시를 보고 장편시 ‘황무지’를 집필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속초에 대형 시설물들이 완공되고 호텔에 투숙객들이 들어서면 부족한 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넘치는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국가는 ‘자연환경 및 경관보전’을 국토의 이용 및 관리의 목적으로 정하고 있다. 여기서 굳이 시민들의 경관자원에 대한 조망 확보 및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도시를 디자인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보다 더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가 많다. 속초라는 공간이 대형 아파트란 괴물과 숙박시설들을 수용할만한 능력이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설악동 소형 숙박단지는 수년간 투숙객의 발길이 끊긴 상태이다. 변명하는 사람들은 리모델링과 적당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해 그런다고 한다. 그것은 타당한 이유가 아니다. 옆에 대형 신축콘도들이 늘어섰는데 누가 작고 불편한 시설로 가겠는가. 새롭고 편리한 것만 찾아다니는 세태가 지속되는 한 현재의 새로운 것은 내일이면 낡은 옛것이 되고 만다. 이미 설악동의 대형 호텔 중에는 폐업준비를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더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가 남아있다. 대형 고층 건축물들은 화마의 위험이 따른다. 때문에 대형 건축물들은 화재 기초예방은 물론이고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나 시설을 예비해야 된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17층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소방차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런던 그렌델타워 화재 사망자는 1백여명 이상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속초시는 ‘2035년 도시기본계획 및 도시관리계획 재정비 용역’이라는 것을 준비하는 모양인데 정신 차리기 바란다. 지금 현재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무슨 2035년 계획인가. 시민들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속초의 미래를 예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반
극작가·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