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돌날이가 시작될 때부터 비가 내렸다. 한국전쟁의 상징 철조망이 두 명의 배우와 함께 등장하자 폭우로 바뀌었다. 무대 위의 해바라기 꽃이 아슬하게 버텨냈다. 스텝들이 우비를 나눠주자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관람석 옆 몽골텐트로 피한 관객까지 합치면 제법 많은 관객들이 공연을 감상했다. 폭우를 뚫고 나오는 북소리는 흡사 폭포 밑 절창을 내지르는 판소리 명창과도 같았다.
북청사자와 속초사자 만남·헤어짐
‘2017 실향민문화축제’의 관심작은 속초시립풍물단의 정기공연 <속초사자와 북청사자의 아름다운 이야기 청사초롱>(극·연출 임오섭, 이하 청사초롱)이었다. 지난해 처음 시작한 실향민문화축제의 대표콘텐츠이자 향후 속초를 대표하는 상설공연의 가능성을 갖고 출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속초시립풍물단의 정기공연은 속초 공연예술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해 속초 어업인의 정서를 그린 ‘만선’도 그랬다. 타악에 기반한 소리의 탐색이 지역의 정체성과 어울리며 익숙하지만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갖게 된 것이다. 올해 실향민문화축제에서 선보인 <청사초롱> 역시 그런 기획의 연장선상이지만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한국전쟁에 의한 분단과 실향의 현실을 북청사자와 속초사자의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우화로 표현했다.
가장 큰 장점은 선명한 기획이다. 사자와 철조망, 유랑극단의 조합은 스토리와 무대의 소품, 주제의식이 촘촘하게 엮일 수 있게 만들었다. 속초의 문화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북청사자놀음과 풍물놀이가 ‘실향’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창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임오섭 연출가는 “속초의 정서를 담은 상설공연을 위해 이야기를 단순화하면서 속초시립풍물단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국악퍼포먼스를 최대한 살린 작품”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청사초롱>은 극 중반까지 다양한 퍼포먼스의 연속이었다. 함경도의 전통민속인 돈돌나리와 사자춤, 퉁소에 이어 화려한 모듬북이 어우러지며 한국 전통공연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위해 속초의 예인들이 모두 모인 점도 특징이다. 돈돌날이 춤을 선보인 신천무용단과 유랑극단의 반주를 라이브로 연주한 런갯마당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지난 몇 년간 합을 맞추며 서로의 리듬에 익숙했기에 가능했다. 극적인 구성을 갖췄지만 대사는 최소화했다. 외국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설공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속초 대표 상설공연으로 만들길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꽃밭과 철조망이라는 핵심 무대소품이 실향민문화축제 배경막과 어울리지 못하여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관객의 참여와 호흡이 중요한 마당극 형식이었지만 무대와 관객이 떨어져 있어 재미를 살리지 못한 점도 아쉽다. 대사가 가장 많은 꺽쇠 역할을 전문배우가 아닌 풍물단원이 맡다보니 후반부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대사 의존도를 조금 더 줄일 필요가 있다.
<청사초롱>은 속초시립풍물단 정기공연만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속초다운 문화정체성을 쉬운 무대언어로 접근했고, 속초의 다양한 공연예술인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다듬어 속초의 대표 상설공연으로 만들 수 있기 바란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속초시립풍물단 정기공연작 <청사초롱>은 북청사자놀음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악퍼포먼스와 실향민 이야기가 어우러져 속초다운 특징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사진은 ‘2017 실향민문화축제’ 메인무대 공연 모습.
분단의 상징 철조망과 평화의 꽃밭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주제의 전달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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