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를 이어가며
‘후릿그물은 자루의 양쪽에 길다란 날개가 있고, 그 끝에 끌줄이 달린 그물을 기점(육지나 배) 가까이에 투망해 놓고, 끌줄을 오므리면서 끌어당겨, 그물을 기점으로 끌어들여서 잡는 데 쓰이는 어구·어법으로 ‘인기망(引寄網)’이라고도 한다.
1926년 11월 1일자로 창간된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 제10호(1927. 12. 20. 발간)에는 ‘메리치잡이, 江原道 襄陽郡, 地方色(강원도 양양군 지방색)’라는 제목으로 후릿그물작업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당시 양양에 사는 박관옥(朴寬玉)이라는 분이 기고한 글인데 당시 후릿그물잡이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때는 맛침(때마침) 멜치때니 한마듸(한마디) 이약이(이야기) 하고저(하고자) 함니다. 江原道沿岸 襄陽(강원도 연안 양양)에서 멜치(멸치)가 만히(많이) 나는데 우리 지방(地方)에서 한 일을(일어난 일을) 이약이(이야기) 하고저 함니다.
요 몃칠전(몇일 전) 일이엿슴니다(일이였습니다). 아침밥 먹고 뜰에 나와 놀고 잇는 중 멀니서(멀리서) 들려오는 급한 소리가 잇섯슴니다(있었습니다). 귀를 기우리고(기울이고) 자세히 들은즉 황급한 듯이
“후리꾼아 나오나라 나오나라, 후리꾼아 나오나라 나오나라”하는 급한 소리엿슴니다.
나도 후리꾼의 한몸이니(일원이니) 나가자 나가자 장관(長官)의 명령(命令)에 후리꾼은 일제히 바다ㅅ가(바닷가)에 나가서 배에 후리를(후리그물을) 실을려고 하엿슴니다. 사령장관(司令長官)은 청기(靑旗)를 바다로 향하야 치면서 빨니빨니(빨리빨리) 나오라는 신호(信號)를 함니다. 우리 부하(部下)들은 후리를 실으면서 애내성(欸乃聲, 어부가 배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랫소리)을 함니다.
“후리꾼아 졍신차려 앵에, 압(앞)바다에 고기논다(고기 들어왔다) 앵에” 하면서 후리(魚網)를 다 싯고 사령장관(司令長官)이 노으라는(놓으라는) 한마듸에 “맥여라 노아라” 하며 후리를 노아 한끗흔(한끝은) 이쪽에 한끗흔(한끝은) 저쪽에 대엿슴니다.
사령장관은 또다시 적기(赤旗)를 육지(陸地)로 향하야 침니다. 후리를 빨니(빨리) 다리라는(당기라는) 신호(信號)엿습니다. 후리꾼들은 땀을 뚝뚝 떨구면서 힘을 다하야 다리고나니(당기고나니) 후리는 육지로 분(分)에 8이(약 80%가) 나왓슴니다. 배에서는 고기를 먹엇다고(그물안으로 고기가 들어갔다고) 꼬리가 길다란 백기(白旗)를 담니다.
사령장관은 청색기(靑赤旗)를 급히 휘둘누면서(휘두르면서) 고기를 육지(陸地)로 퍼올니라고(퍼올리라고) 명령(命令)합니다. 우리는 명령이 뚝 떨어지자(떨어지자) 고기 퍼내는 쪽때를 들고 퍼내면서 또 한마듸의 소리가 나옴니다.
“가래로세 에양에, 가래로세 에양에” 하고 퍼냄니다.
그가 온대도 또 이상한 일이 잇슴니다. 안洞里(안동네)의 남녀노소(男女老少)들은 싸리바굼이(싸리 바구니)를 들고 고기 주으러 나옵니다. 남자(男子)보다도 여자(女子)가 속고의만(속옷만) 닙고(입고) 고기 줏노라고(줍느라고) 대활동(大活動, 난리법석)이지요. 우리는 후리꾼의 한 사람이니 모래를 끼언저서 쫏차보내랴고 하나(쫒아보내려고하지만) 어듸 가줌니까?(어디 물러난들 하겠습니까?)
모래를 맛던지(맞던지) 물에 빠지던지 사생을(죽고사는 것을) 생각(生覺)치 안코(않고) 고기 줏는(줍는) 것이 퍽 자미잇지요(재미있지요).
우리는 큰 일이나 한 것처럼 먹을 타령이 나오지요. ‘막걸리’ 생각이 나서 여기서 저기서 “어추어 어추어(어! 추워)” 라는 소리가 연방(연달아) 들리지요.
장관(長官)은 추으면 막걸리 한동의(한통자) 갓다(갖다) 먹으라고 하지요. 우리는 조타고(좋다고) 멜치국(멸치국)에 막걸리 잔이나 어더먹는(얻어먹는) 것이 참으로 큰 자미(재미)올시다.
이것도 우리 어촌(漁村)의 특색(特色)이라 할 넌지요(할 수 있는지요).<161> 끝.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 각 지역에서도 후릿그물방식의 조업은 흔히 이루어졌다. 경상도지역에서는 흥해, 장기, 연기, 울산 등에서 청어를 잡는데 후릿그물을 사용하였고, 동해안에서는 멸치를 잡는데 후릿그물을 사용하였다. 당시 양양지역에서는 속초리, 속진리, 동호리, 수여리, 후진 등에서 후릿그물을 사용하여 고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울산 멸치후리 그물당기기는 모래가 깔린 해역에서 그물을 당겨 멸치를 잡던 방식으로 흔히 ‘후리’라고 불린다. 이 어로방식은 길이 800ｍ에 이르는 긴 그물을 U자형으로 둘러치고 80여명이 끌어당겨 멸치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온산지역 공단화와 어획량 부족 등으로 인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속초리 유명한 후릿그물 사령장관
속초시 동명동 450-40번지에 사시던 고 정영호(鄭永浩, 1938~2011)님의 말씀에 의하면 조부 정수동(鄭守同, 1873~1953)께서는 1930~40년대 속초리의 유명한 후릿그물 사령장관(司令長官)이셨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일본인들이 다시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선산을 팔아 배 2척을 사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연해에 다시마를 채취하러 갔다가 불법어업행위로 인해 극동수비대에 잡혀 선원들은 내보내고 선주인 조부만 2년간 옥살이를 하다 천신만고 끝에 함흥으로 탈출하여 1년 여 만에 속초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속초로 오신 조부께서는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다가 엄청나게 큰 목소리와 멀리 보는 시력 덕분에 사령장관(司令長官)이 되었다고 한다. 사령장관은 보통 배 선주에 의해 선택되는데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물을 당기는 사람들이 정확히 이해하고 빨리 행동하므로 고기 잡는 양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의 동명동 산361번지(속초감리교회 언덕, 구. 동명동 성황당 앞)과 동명동 450-191번지(구 속초시장 관사 동쪽)의 바닷가쪽 언덕에 올라 고기가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미리 정해진 문장을 큰소리와 깃발로 후리꾼들에게 작업행동을 시달하였다고 한다.
전(前) 현대극단 단원이셨던 김정우씨는 그의 저서 <내 고향 속초, 1984년 출판>에서 ‘현 동명동 속초감리교회 자리는 높은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든 곳에 건물에 세웠지만 옛날에는 동명동 천주교회 자리와 속초감리교회 자리가 모두 크나큰 송림 숲이 우거진 높은 지대였다. 경방단 초소(화재나 공습을 감시하는 초소)가 세워지기 전에는 해변에서 어로작업을 하던(후릿배) 고기떼 보는 장소(사령장관의 근무위치)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감리교회 자리는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였다’고 하여, 이곳이 후릿그물 사령장관이 위치했던 곳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회상하고 있다.
동명동·외옹치리 주변 후릿그물 성행
잡은 고기는 역할에 따라 나누게 되는데 배 선주가 수확량의 30~40%를 갖고, 후릿사령(사령장관)이 10~20% 갖게 되고 나머지 그물을 끈 사람들이 분배를 한다고 하였으며, 위의 <별건곤(別乾坤)>에 소개된 것처럼 후릿그물이 올라오면 아낙네들이 어디 있다가 나타났는지 소리소문 없이 달려들어 잡은 고기를 행주치마에 넣어 줄행랑을 쳤으며, 구경나온 꼬마들도 한 마리씩 얻어가는 것이 재미였다고 한다.
속초지역에서는 동명동, 청호동, 외옹치리 주변지역에서 후릿그물이 성행하였다고 하니, 그러고 보면 속초지역에서도 후릿그물의 꽃인 사령장관이 여러 명 있어 그들끼리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였음을 엿 볼 수 있다.
양양군 동호리, 포항 월포리 해수욕장, 도구 해수욕장, 울진 등 경북의 동해안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여름 피서기간에 후릿그물체험을 즐길거리로 개최하는 곳이 있기도 하지만, 어종의 고갈로 인해 이젠 속초지역에서 후릿그물체험이 어렵게 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참고문헌:<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농상공부, 1908) <한국수산업사>(박구병, 태화출판사, 1966)
*본 글은 속초문화원의 도시변천사기록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953년 사진을 배경으로 한 후릿그물 장소 - 속초리 수복탑 앞바다.(사진 : 폴팬쳐 기증)
정상철
속초문화원 부설
속초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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