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비 오는 주말,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과 속초에 왔는데 비가 오니 할 게 없단다. 바다를 바라보며 회로 점심을 먹긴 먹었는데 그 다음 즐길 거리가 전혀 없다며,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는 장소 좀 알려달라는 전화였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여러 개의 장소를 추천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무렵, 그 친구는 내일도 계속 되는 비 소식에 예약했던 숙소도 취소하고 다시 집으로 간다는 전화를 남기고 떠났다.
올 여름 우리가 사는 영북 지역은 주말마다 비가 오는 날이 많았다. 홍천과 양양사이의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지역 경기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치가 컸던 탓에 주말마다 내리는 비는 지역민의 마음을 눅눅하게 적시고, 무거운 어깨를 더욱 처지게 만들었다. 강원일보 기사에 의하면, 올여름 기상 악화로 속초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은 지난해 보다 15%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45일간 운영된 해수욕장 개장 기간에 찾아온 피서객 수는 298만 8천 여명으로 전년대비 84.99%에 그쳤다고 한다. 주원인은 기상악화로 입수 통제가 된 날이 총 13일에 달했고, 특히 주말마다 예보된 비 소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그 원인이 날씨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좋아진 탓에 당일치기 피서객의 증가도 지역경제 활성화의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몇 년 후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과연 장밋빛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 우리 영북 지역 관광시스템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관광 전문가가 아니어서 정확한 예측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보통시민의 입장으로 생각해도 장밋빛 꿈만큼이나 빨대효과 같은 부작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영북 지역의 지자체들은 산과 바다와 호수만 우려먹는 관광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 우리 지역의 관광자원을 포스트 투어리즘(post tourism)의 시대에 맞게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지만 속초의 관광자원을 4개의 벨트로 묶고, 그 벨트별로 포스트를 정하고, 그 포스트의 특색을 살려 교육적 요소를 가미한 즐길 거리를 만들어 내야한다.
제 1벨트는 갯배를 출발점으로 청호동과 엑스포공원을 기점으로 청초호 둘레를 순환하는 관광 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제 2벨트는 영랑호, 연금정, 속초등대, 장사항을 연결하고, 제 3벨트는 국립 산악박물관, 속초 시립박물관, 얼 라이브 하트, 테라 크렙팜, 테디베어 뮤지엄, 부엉이 박물관, 자생식물원, 족욕 공원을 잇는 체험벨트를 구상해야 한다. 제 4벨트는 설악산, 학무정, 하도문 쌈채마을, 설악항, 대포항, 외옹치, 속초해수욕장을 하나의 벨트로 묶어서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를 체계화 시키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여기서 체계화 한다는 말은 각각의 벨트에서 특성화된 포스트를 지정하고, 그 포스트에서 관광객들이 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코너들을 안내하고, 더 나아가 속초에 온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속초체험 워크북을 제작해서 배부하는 노력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만들어진 속초 관광 안내지도에서 한 발 더 나가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지역의 젊은 친구들이 시도하는 거리 인문학 지도도 좋은 아이템이 될 수 있다. 또 이런 이벤트는 어떨까? 갯배를 단지 유지 운영하기 위해 도선료를 받지 말고, 한 배에 20명 정도가 될 때까지 기다리게 했다가 ‘갯배 빨리 끌기’ 시합을 시키고 먼저 도착한 승객들에게 속초시 상품권 5,000원을 상품으로 준다면, 그 5,000원만 쓸까? 기다리는 동안 구 수협건물을 리모델링한 문화공간에서 전시회도 보고, 야외공연도 볼 수 있게 만든다면 진짜 말 그대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각 지자체는 자체 공무원의 힘만으로는 사업추진이 힘들다, 지역의 각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운영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관광도 이제는 맞춤형이 되어야 한다. 가족단위 관광 프로그램, 계절별 프로그램 등 상황에 따른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왔다가 그냥 갑니다.’라는 전화를 우리 시민들은 더 자주 받게 될 것이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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