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 스마일사진관 박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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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8년02월12일 13시43분 ]

하늘에서 복숭아가 떨어졌다는 전설의 마을, 인제 원통에서도 북쪽으로 40리를 더 가야 천도리에 닿을 수 있다. 산촌마을 여럿을 지나 비득고개를 넘어서면 서화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천도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 시골장터 같은 정겨운 기다란 골목 한켠에 천도리의 유일한 스마일사진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스마일 캐릭터와 똑 닮은 박사장님을 만날 수 있다. 아담한 키에 시원한 이마 그리고 온화한 미소가 박사장님의 트레이드마크이다.
역사로 말하면 박사장님은 70년대 초부터 거주하며 가정을 이뤘다. 미군은 복숭아그릇 같다고 천도리를 피치볼이라 불렀다. 협곡을 따라 전술도로 서화축선은 군부대 밀집지역으로 6.25전쟁 후 1955년부터 민간인이 마을에 정착했다. 10년 전에는 서화리 끝자락이 민통선이었다. 더 가면 전투로 유명한 도솔산과 화채그릇을 닮은 양구 해안면 펀치볼로 이어진다.
전통으로 말하면 서화축선에서 복무한 장병들이라면 스마일사진관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사진관에는 인근부대를 거쳐 간 역대 주임원사들의 견본사진이 가득 걸려있다. 역사기록의 산실이다. 한동안은 스마일사진관이 국방부 긴급전화 설치장소였다. 1990년 제4땅굴 발견당시 박사장님은 민간인신분으로 현장촬영을 담당했다. 정훈병을 대신해 지역의 유일한 사진전문가로 보안완장을 차고 증거사진을 맡았던 것이다.
필자가 박사장님과 인연을 맺은 지도 오래다. 계약학과 서화캠퍼스를 개교한 때부터다. 최전방 부사관들에게 대학진학의 기회를 주려는 의욕으로 거듭 간청한 끝에 당시 3군단장의 허락을 보름 만에 받았다. 격오지까지 52Km를 출강하겠다는 각오가 통했다. 폐교된 서흥분교 과학실을 임시강의실로 꾸몄다. 그 다음해 박사장님의 주선으로 천도리 119지역대 2층을 강의실로 정하고 인제군의 허락과 쉽지 않은 주민동의를 얻어내야 했다. 학교지원으로 전기수도설비와 리모델링 그리고 임시화장실도 만들었다.
서화캠퍼스 첫해는 면사무소에서, 그 다음부터는 119지역대에서 입학식을 했다. 인제군수, 서화면장 그리고 인근부대장들을 초청했다. 총장님을 모시고 입학식의 격식에 맞춰 교수들은 박사가운을 입었다. 입학식 다과를 위해 아내는 떡이며 닭강정 등을 바리바리 준비해갔다. 주말강의라서 점심은 단체로 했다. 지역경제를 위해 순번으로 마을식당을 이용하게 했다.
부대가 밀집한 지역이지만 학생모집을 위해서는 매년 직접 부대를 방문해야 했다. ‘맹호출림 산악군단’은 매우 넓다. 인제현리 사령부에서 가리산을 거쳐 리빙스턴다리부대, 인제남면에서 다시 진부령･향로봉 국군부대, 원통사단을 지나 서화축선 여러 부대와 도솔산 넘어 펀치볼을 지나 양구 팔랑리까지 다녔다. 그 때문에 부대위치는 군전문가 이상이지만, 기밀사항인 부대의 병력과 화력은 일부러 관심 밖에 두었다. 이렇게 9백 명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때마다 스마일사진관은 우리대학의 입시창구였다. 감사하여 식사대접을 하려해도 매번 겸양으로 거절하셨다. 서화장날에 한두 번 주전부리 간식을 사드린 게 전부다. 드린 것에 비하면 갈 때마다 농사지은 배추, 가을추수 잣, 들기름 등을 주신다. 박사장님의 잘생긴 청년아들도 올해 우리대학 학위를 받는다. 아버지를 빼닮은 박상사는 보기 드문 성실한 청년인데 수년전 야영객을 익사직전에 구한 의인으로 사단장과 인제경찰서장 표창을 받았다.
새해에도 입시를 위해 수차례 천도리에 갈 때마다 맨 먼저 찾는 곳, 번창해야할 스마일사진관이 얼마 전부터 농작물상자로 채워져 간다. 갈수록 스마트폰에 밀려 찾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군인들이 위수지역 완화로 천도리 상점들은 적막하다. 반대로 원통의 PC방, 편의점은 군인들로 붐빈다. 얼마 전 박사장님은 그 모습을 사진작가의 시각으로 찍어다가 걱정하며 내게 보여주셨다. 어찌하나. 하늘나라 복숭아가 천도리에 다시 떨어졌으면 좋겠다.
최철재
경동대 교수·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