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이자 작업실인 ‘동명헌’
영랑교를 건너 속초고등학교를 지난 후 고성 용촌리로 접어들자 더욱 한산한 풍경들이 이어진다. 얼마 안 가다 좌측 편으로 접어들어 마치 강물이 굽이치듯 좌우로 몇 번 돌아 들어가자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전원주택들이 이어진다. 그중 한 곳에 단독주택임에도 ‘동명헌’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집이 보인다. 수채화가 박동국 작가의 자택이자 작업실이다.
‘동명헌’은 박 작가 본인이 설계했다.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 누구나 한번 꿈꾸어 보는 자신만의 집을 작가가 만든 것이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단독주택임에도 내부에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취재가 이뤄진 1월의 매서운 추위와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큰 창문으로 한기가 몰려올 법도 하지만 밝은 빛만 들어와 내부를 환하게 할 뿐 서늘한 냉기를 뿜어내진 않는다.
2층에 위치한 작업실 역시 곳곳에 창문이 있어 실내임에도 그리 어둡진 않다. 작업실 바깥쪽에 위치한 테라스에서는 고즈넉한 전원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해질녘의 모습은 향수에 젖어들게 하며 차나 술을 곁들이면 감수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자택이자 작업실인 ‘동명헌’에는 난간이 보이지 않는다. 2층 작업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난간이 없고 작업실 옆쪽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없다. 그래서 작가는 어린 아이가 이곳에 오게 되면 다치진 않을지 걱정을 하게 된다고 한다. 난간을 만들지 않은 까닭은 뭘까? 단지 멋스러운 인테리어를 위해서? 그게 아니다. 여기에는 작가의 작업과 관련된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대형 작품도 적지 않게 그리는 작가가 그림을 옮기기 쉽도록 일부러 난간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수채화가 박동국 작가는 강원도 홍천 내면의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박동국 작가의 말에 의하면 8남매 모두 예술적 감각이 남달랐다. 그의 큰형은 사진관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자신보다 더 나은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작가가 말했다. 그러나 고향이 너무 오지인 데다가 집안이 가난해서 그의 손위 형제들에게 체계적인 예술 교육은 요원한 일이었다.
박 작가는 형제들의 영향인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 역시 어린 시절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가 다닌 학교에는 미술을 전공한 교사가 없었고 중학교에서도 다른 과목을 동시에 맡은 상치교사밖에 없어서 미술을 제대로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고교 진학해 깊이 있게 미술 배워
그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그가 좋아하는 과목을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게 됐다. 홍천 고향마을 인근에는 고등학교가 없어 춘천에 유학을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미술부 활동을 하며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춘천에서는 미술학원도 다닐 수 있었는데 학원비가 부담스러운 그를 원장이 배려하여 모두가 귀가한 밤에 학원 뒷정리를 하는 조건으로 무료로 그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여려서인지 공짜 수강에 눈치가 보였고 그래서 학원에 오래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에는 고교 선배가 있는 개인 화실에 가서 어깨 너머로 배웠다.
당시 그는 서울로 진학을 하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자신의 그림 실력에 자신감이 넘쳐 지역 대학의 미대생들은 실력이 부족하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에서인지 사범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범대는 별 볼일 없다고 볼 정도였다. 자신의 미래는 오직 서울에 있는 유명 미술대학에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 혈기에 자신의 그림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선배가 사범대 진학을 강하게 권유하면서 점차 생각을 바꾸게 된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수입이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미술교사가 된다면 이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가정 형편을 고려해 국립대 사범대로 진학했지만 교사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교사란 직업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갖는 직업 정도로 생각했다. 사범대 진학 이후 자신보다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서울 소재 미술대학에 가서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의 진로 선택이 옳았다고 보고 있다. 미술가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범대를 나와 교사가 된 이들이 모두 작품 활동을 안정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활동과 교직 생활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동국 작가가 보기에 사범대 출신 중에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 작가는 교직과 미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흔치 않은 예이다. 더군다나 박 작가는 평소에 운동을 좋아해서 여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그림을 그릴 시간이 나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박 작가에게 그림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시간이 날 수밖에 없다. 남들이 쉬거나 자는 시간에 그는 작업에 몰두한다.
2003년 이후 해마다 개인전 열어
주위에서는 교직에서의 승진을 권유하고는 한다. 그러나 누구나 알듯이 한 조직에서의 승진은 그 사람이 가진 실력만으로 되진 않는다. 벽지 근무도 해야 하고 때로는 여기저기 아부도 할 줄 알아야 승진에 유리하다. 박 작가는 과감하게 승진을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그에게 승진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이다.
작가는 1년에 한 번은 개인전을 열자는 신조를 갖고 있고 실제로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2003년 이후로는 해마다 개인전을 해왔고 지금까지 연 개인전이 17회에 이른다.
박동국 작가가 승진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는 우리 교육 현실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우리 교육계에서는 이른바 ‘주요 과목’만을 중시 여기고 예체능 과목을 가벼이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예술은 꼼꼼한 관찰과 기발한 사고로 세상을 해석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곧, 창조성을 기를 수 있고 체육은 국민 보건의 향상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진학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과목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과목만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담당 교사마저도 가벼이 여기기도 한다. 그가 승진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예술을 가벼이 여기는 교육 현실에 비판적인 자세로도 평가할 수 있다. 박동국 작가는 미술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좋은 인생을 사는지 보여주고 싶은 오기가 생길 때도 있다고 한다. 작가의 작업실에 가득한 그림들을 한번 둘러보고 그 옆 테라스에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기만 해도 작가는 그 누구보다 충분히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듯 보인다. <다음에 계속>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박동국
-강원대학교 미술교육학과 졸업
-개인전 17회(예술의전당 등)
-국내외 초대전 400여 회
-대한민국 아트페스티벌 초대전
-오스트리아 비엔나아트쇼 초대전
-대한민국현대미술 르네상스 초대전
-동북아시아의 여명전 등
-한국미술협회 속초지부 회장(2011~2013)
-속초시 문화상(2014)
-강원미술상 본상(2015)
-작품 소장처 : 일본 돗토리현청사, 러시아연해주립미술관, 진부령미술관, 원주시청 등
수채화가 박동국 작가
박동국 작가의 자택이자 작업실.
작가의 자택 2층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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