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풍경, 아련한 향수를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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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풍경, 아련한 향수를 부르다

예술가의 작업실<3> – 수채화가 박동국(하)

등록날짜 [ 2018년03월12일 13시45분 ]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법 구축
박동국 화백이 수채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교사가 된 이후의 일이다. 크고 작은 착오를 거치며 자신만의 기법을 정립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수채화 전시회도 자주 찾았고 서울까지도 적잖게 오갔다. 수채화 전문 작가를 찾아 비결을 묻기도 했다.
예전에는 수채화를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박동국 작가는 대학에서도 수채화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우선 대학에 수채화 전문가가 없었고 사범대는 교육자 양성이 주가 되었기에 미술 전문성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수채화 공부는 정해진 스승이 있다기보다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독학의 과정은 힘들었다. 아침이면 출근을 해야 해서 자신만의 기법을 구축하는 데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수채화에 중점을 둔 지 10년 정도가 흘렀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박 작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그의 그림이 일반적인 수채화 같지 않다는 평을 하고는 한다. 박 화백이 특정한 스승에게서 사사하지 않았기에 개성 있는 작품을 빚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어 낸 것에는 그가 교사 생활을 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많은 예술가들이 화랑의 요구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내고는 한다.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작품과 비슷한 그림을 그릴 것을 화랑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상당수 예술가들은 을의 위치에 있기에 화랑의 상업적 판단을 무시하기 힘들다. 그런데 박동국 작가의 경우 미술교사라는 직업이 있어 이런 분위기와 타협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별도의 직업을 가진 것이 예술 활동에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기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원하는 그림이 되지 않을 때 그림을 그리다가 그대로 둔 채 출근하는 일은 그에겐 힘겨운 일이었다. 느낌을 계속 가져가면서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데 그 흐름을 강제로 중단해야 하므로 때로는 출근이 예술가의 창작 욕구에 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1년에 2백점 그려…평생 목표 2만점
그런데 그는 여러 장르 중에서 왜 수채화를 선택했을까? 여기에는 자신이 처한 조건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유화는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하고 시간도 상대적으로 오래 걸린다. 유화는 기름이 마르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전체 작업 시간도 길 수밖에 없다. 반면 수채화는 단시간에 마른다. 그래서 빠르게 다음 작업으로 옮겨갈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간편한 일이다.
수채화는 작업 시 물을 활용하는데 이는 우리의 수묵화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이 점도 그가 수채화를 선택한 이유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시골마을, 소나무, 겨울 산의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서양화가 아니라 수묵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통 수채화는 보존성이 약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이들은 수채화를, 유화를 그리기 전에 거치는 단계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우수한 재료들이 나와서 보존성이 개선됐다. 반영구적인 수채화 물감도 나왔고 중성지도 좋아졌다.
수채화는 유화에 비해 수정이 쉽지 않은 단점도 있다. 반면 유화는 이에 비해 수정이 용이하다. 덧바를 수 있는 것이다. 수채화는 그린 곳이 잘못돼 다시 칠하면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그림이 된다. 이런 까닭으로 박 작가는 실패를 예방하기 위해 준비시간이 길다. 샘플작업을 세밀하게 하며 예행연습을 하듯 본 작업을 치밀하게 준비한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본 작업에 나섰다가는 물감과 종이를 허비해버리기 쉽다. 손가락만한 물감 하나가 만 원 이상이고 종이 1롤(130cm × 960cm)의 가격이 2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작업실에 걸린 샘플작업 결과물들을 보면 대충 스케치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릴지 꼼꼼하게 고민한 흔적이 담겨 있다. 따라서 작업시간이 유화보다 짧다고 해서 박 작가의 수채화 작업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따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 수채화 작업을 하루에 1시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드로잉 작업은 매일 한다. 학교에서도 시간이 나면 수시로 드로잉을 한다. 작가는 1년에 200점 정도를 그리고 있는데 목표는 평생 2만 점을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다작 끝에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많은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작가의 작업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순간 실험과 연습을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작품에 대한 보통 사람들 시선 중요시
박동국 작가의 작품에는 나무, 산, 시골마을, 해변, 항구 등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배경의 상당수는 겨울이다. 눈 덮인 산, 겨울 해변, 설원을 배경으로 하얀 가지를 뻗고 있는 자작나무 등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그림 속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 적막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련한 향수를 부른다. 눈 내린 산골에 놓인 집 한 채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 작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웃으며 반겨주실 것 같다. 백두산의 설경 속 저 멀리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호랑이가 매섭지만 고독한 눈빛을 반짝일 것만 같다. 로키산맥 너머에서는 멸종되어 가는 수리들이 흰 구름을 뚫고 날아오를 것 같다.
박 작가는 지천명(知天命)이 넘으면서 작가로서의 책임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한다. 오십대가 되기 전에는 그런 고민이 깊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이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그림이기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법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술적 측면보다 감성적인 면을 더 중시 여기게 됐다. 따라서 박동국 작가는 화려하거나 특별한 기술이 담긴 그림을 고집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는 작품이 더 좋은 그림이라 생각하며 감상하는 사람들이 봤을 때 거슬림이 없는 그림을 추구한다.
그런 까닭에 박동국 작가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중요시한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는 아내에게 보여주며 아내의 의견을 꼭 청취한다. 아내는 그림을 모르지만 아내의 평가를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아내만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하려 하고 있다. 비전문가의 얘기를 듣는 것은 사람들이 느끼는 바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과정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박동국 작가는 30년 가까이 그림을 그린 지금까지도 여전히 끊임없이 스스로를 연마해 가고 있다. ‘독학’, ‘탐구’는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이다. 따라서 박동국 작가의 예술세계는 여전히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고 할 것이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박동국 화가

백두산의 겨울(35cm × 35cm). 2010년.

자작, 하얀 영혼의 실루엣 201618(40cm × 80cm). 2017년.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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