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조각가는 속초 노학동에서 게 생태체험관 ‘테라크랩팜’을 운영하고 있다. 게와 조각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각가가 게 체험관을 운영한다고 하면 우선 ‘신기하다’는 생각부터 할 것이다. 게의 생태와 조각이 연관 있다고 여기긴 힘들기 때문이다. 게를 키우고 생태를 관찰하는 것은 과학자나 수산업 종사자의 일이지 예술가의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얘기를 들어보면 작은 연결지점이 있다. 작가는 가시를 소재로 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게의 집게발도 뾰족하다는 점에서 가시와 연관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를 방문하자 작가는 게 생태관을 먼저 소개해 줬다. 생태관은 게들의 생태를 설명해주는 안내판, 그리고 게를 만져보거나 관찰할 수 있는 공간들이 이어져 있다. 또한 생태관 곳곳에는 작가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테라크랩팜’은 생태체험관일 뿐 아니라 예술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게 생태관 옆 ‘황토공방’이 작업실
작가의 작업실은 게 체험관과 연결된 곳에 위치한다. 생태관 옆의 ‘황토공방’이 작가의 작업실과 작품 전시실, 그리고 작품 판매장을 겸한다. 여기에 하나 더, 관람객들을 위한 체험실 역할도 한다. 관람객들이 방문해서 공방체험을 요청할 경우 황토 방향제, 석고 방향제를 비롯해 다양한 모양의 조형물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작업실에는 여러 가지 완성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황토공방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흙으로 만든 수많은,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작품들이 공방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큰 작품보다는 냉면 그릇보다 작은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형태에 있어서는 살을 발라낸 생선처럼 생긴 작품들도 있고 테트라포드 모양의 작품들도 있다. 이외에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형상의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작품들의 색깔도 다채롭다. 어떤 것은 누런빛을 띠고 또 어떤 것은 검은 색깔에 가깝다. 또 갈색이나 고동색, 흰색 등 흙 작품이라고 해서 하나의 빛깔만 띠지는 않는다. 이 공간에 황토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조 작품과 금속 작품도 작게나마 작업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작업실인 만큼 여러 작업 도구와 가마 같은 시설들도 눈에 띈다.
흙은 창조 위한 가장 기본 재료
흙, 금속, 돌, 나무, 비누, 얼음, 동물의 뼈 등 조소의 재료는 다양하다. 박영근 작가의 주재료는 지금까지의 언급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흙이다. 박 작가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흙이 제일 좋은 재료이며 창조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재료라고 생각한다. 흙은 무언가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순발력이 좋은 재료이다. 흙은 연질이라 생각을 구체적인 형태로 빨리 옮길 수 있다. 잘못됐을 때에는 수정도 용이하고 세밀한 작업을 할 때 다루기 쉽다. 돌, 금속 같은 재료는 세밀하게 다듬는 데 한참이 걸리지만 흙은 경질의 재료와 비교하면 미묘한 것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박 작가는 어떤 계기로 흙으로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것일까? 박영근 작가는 어린 시절 물이 고인 학교 운동장에서 흙장난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모친이 자신을 찾으러 올 때면 그는 항상 흙장난에 몰두하는 중이었을 정도라고 한다. 박 작가는 손으로 흙을 만졌을 때 그 촉감이 너무 좋았다. 흙으로 작업을 많이 하는 조각가 박영근의 예술적 감수성은 그때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그는 조소부에서 활동했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조소부였다. 그리고 그렇게 쭉 지금까지 조각가의 한길을 걸어오고 있다.
박영근 작가는 경제적으로 힘들 때에도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고 쉬지 않고 작업을 해왔다. 어떤 이는 작업을 몇 개월 씩 멈추거나 꽤 오랜 기간 쉬기도 하지만 박영근 작가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박영근 작가에게 예술 작업은 중독성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러하기에 당연히 예술가가 됐을 것이다.
완성작도 마음에 안 들면 폐기
작가는 작업을 한번 시작하면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한다. 현실의 일은 곧잘 잊어버린다. 가령, 공과금 납부 같은 문제도 까맣게 잊는다. 그러나 그렇게 집중해서 작품을 만들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만들던 작품을 하루아침에 부수거나 버리기도 한다. 미완성 작품뿐 아니라 완성작도 폐기할 때가 있다. 마치 도공이 다 만든 자기를 단번에 깨버리듯 자신의 작품을 폐기하는 것이다. 도자기 크기처럼 작은 작품만 부순 것이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만든 대형 작품을 부순 적도 있다고 한다.
작가에게 지금까지 만든 작품 수가 몇 점인지 물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요.” 작가의 답이었다. 작가에게 자신의 많은 작품을 폐기한 이유를 묻자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못나 보이는 작품들을 버린 것이라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은 작품도 자신이 보기에 부족하다 싶으면 폐기되는 것이다. 만들 당시에는 흡족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한 면을 보게 되면서 버린 작품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예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폐기되는 작품들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하는 경우는 있지만 박영근 작가의 경우 그 정도가 더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평생에 잘 나오기 힘든 거지요”라며 담담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작가가 세워놓은 기준이 엄격하게 느껴졌다. 박영근 작가는 개개의 작품 활동보다 자신의 예술세계 구현에 중심을 두는 작가로 보였다. <다음에 계속>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박영근
-속초고등학교 25회 졸업
-관동대학교 미술교육학과 졸업
-관동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 조소과 졸업
-전 동우대학 강사, 관동대학교 겸임교수
-개인전 4회, 단체 그룹전 150여 회
-일본 삿포로 스노 페스티발 대상 수상
-전 강원도 미술협회 조각분과 위원장
-전 속초예총 부회장
-한국미술협회 속초지부 회원
-설악산 입구 해맞이 조각공원 작품 제작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조형물 제작 등
조각가 박영근
박영근 작가의 작업실 겸 전시실.
게 생태체험관 곳곳에는 이와 같은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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