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전통은…
강원도 농산노동요(農産勞動謠)로서 ‘김매기 소리’는 춘천, 삼척, 양양, 속초일대에 전승되는데 그 중 하나가 ‘도문 메나리농요’이다. 도문동과 노학동 지역은 ‘도문평야’와 ‘소야평야’가 있어 농업이 주를 이루는 마을이다. 추석 때가 되면 배나무골(지금의 노학동 도리원)에서는 ‘풍년놀이’와 ‘도리원 농악’를, 만천동에서는 ‘광대놀이’를 하면서 달맞이를 하고 놀았다고 한다.
조양동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어망추나 뼈낚시, 묶음식 낚시, 창끝 등으로 미루어볼 때 속초지역은 선사시대부터 활발한 어로활동을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노동집약적 어업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산 노동요’이다. 장사동이나 대포동에는 ‘다리어’, ‘에라솔 가래라솔’, ‘베끼어라 보자’ 등의 노동요 후렴구가 아직까지 전승된다.
겨울에 청초호가 얼게 되면 그것을 보고 새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 있다. ‘용갈이’라고 하는데, 한자로 ‘용경(龍耕)’이라 한다. 청초호는 바다와 연결되어 호수 밑에 사는 용이 논두렁처럼 얼음을 갈아 놓은 것을 보고 물의 수량을 예측하는 것이다. 용이 얼음을 남쪽으로 갈아 놓거나 복판만 갈면 이듬해는 ‘풍년’, 북으로 엇갈거나 옆을 갈면 ‘흉년’, 좌우로 마구 갈면 ‘평년작’이라고 점친다. 이러한 용경풍속은 조선시대 읍지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청초호는 지역 원주민들이 ‘논뫼호’라 불렀는데, ‘논뫼’는 ‘논산리(論山里)’를 뜻하므로 ‘논산리 앞의 호수’라는 뜻이다. 전하는 말로는 조선 숙종 때부터 이 고을로 오는 수령을 위해 주민들이 경축행사로 논뫼호에 꽃배를 띄우고 놀았다고 하는데 ‘낙화유(落火遊)’라 부르는 불꽃놀이가 행해졌다고 한다. 8년 전 속초시에서 추진했던 ‘불꽃축제’의 기원이기도 하다.
대포동 외옹치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솟대와 함께 마을입구에 세우는 ‘장승 세우기’와 성황제인 용신제(龍神祭)로 구성되어 부락제(部落祭)의 고유한 모습을 전승시킨 ‘외옹치 고풀이’라는 전통 민속행사가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다.
그밖에 ‘나룻배 싸움놀이’<지금의 청호동 갯배나루는 30m뿐이 안되지만 옛날의 만천동 나루는 북으로 영랑호, 남으로 청대리 싸릿재(싸리재)를 이어 도문동으로 연결되었으며, 동쪽으로는 대포동에 이르렀다.>, ‘든대질 놀이’(배를 진수할 때 부르는 집단노동요), ‘좀생이 보기’(2월 6일에 좀생이라는 별자리를 보고 점을 침.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기록되어 있음) 등 속초는 수많은 전통과 세시풍속이 존재하는 고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지역의 전통은, 원주민의 전통은 현대식 놀이, 세대의 변화 등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옛 전통은 사라지고 지금은 피난민들이 가져온 ‘북청사자놀음’이 속초의 대표 전통문화가 되어버렸다.
■지금 속초사람, 지금 속초를 위해
풍문에 의하면 속초인구의 출신도별 구성 비율을 보면 전라도 30%, 경상도 30%. 충청도 20%, 이북출신 10%, 원주민은 10%라고 한다. 현재인구 8만3천명 중 10%인 8,300명만이 속초 원주민이라는 얘기다. 이 통계가 사실이라면 이 지역의 전통을 원주민들의 후손들조차 생소한데,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아예 그 전통의 존재조차 모르는 것이 당연지사인 것이다. 10명 중 9명이 모여 속초가 뿌리가 없거나 전통문화가 없는 도시로 얘기한다면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본 글의 의도가 속초의 원주민과 다른 지방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분리, 차별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비록 태어난 곳은 다를지라도 지금은 속초에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속초에 뼈를 뭍을 엄연한 속초시민이 아닌가?
‘북청사자놀음’을 제치고 ‘도문 메나리농요’, ‘배나무골 풍년놀이’, ‘만천동 광대놀이’를 속초시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로 되살리자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북청사자놀음’이 속초의 대표적 관광문화상품이 아닌가?
일제강점기 시절의 속초 주도세력의 교체, 인공치하 시절의 주도세력의 교체, 미군정 시기의 주도세력의 교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부 마을의 주민들은 아직도 옛 기억에 대해 ‘쉬 쉬’하는 경우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가족사일 수 도 있다. 1981년 연좌제(緣坐制,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이는 형식적으로 폐지된 것이지 2000년대까지 만해도 강제 납북된 사람의 친인척은 공직시험에 합격하더라도 공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예로 대포동에 모씨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장교로 나갔었고, 그의 동생은 동해 어로한계선에서 명태를 잡다가 납북되어 귀환된 후, 안기부에 잡혀갔다가 풀려났다. 그런데 무슨 귀신이 쓰였는지 술만 퍼 마시다가 만 30세가 되지도 못해 저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납북되어 인민군 장교였던 형을 만났던 것이 아닐까? 당시는 억울하게 납북되었다 돌아오면 간첩으로 모는 서슬 퍼런 시대였으니…. 생계를 위해 바다로 나갔다가 강제 납북된 후, 다시 돌아왔다가 간첩으로 몰려 명예회복을 위해 지금까지도 투쟁(?)중인 분들이 주위에 많은 실정이다.
경기도 파주, 포천, 연천, 가평, 화천, 인제, 춘천 산북면, 양양 현북면 등 38선 이북지역의 수복지역 사람들은 속초 사람들과 비슷한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지금의 사람들은 ‘자유’라는 것을 누리고 있다는 현실을 체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옛날 분들은 알 것이다. 무엇이 좋은지를….
요즘 ‘도시재생(都市再生)’이라는 문화트렌드가 한창 뜨고 있다고 한다. ‘도시재생’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기존의 관에 의해 주도되어 오던 ‘도시계획’, ‘도시정비사업’ 등의 사업과 해당 지역의 ‘주민공동체의 합의’가 합쳐진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속초의 뿌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재생(再生)’의 개념이 튀어 나오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과거’는 ‘과거형’으로만 끝나야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래’라고 말하는 순간, 벌써 과거가 된다.
필자는 이 ‘도시재생’의 범위에 ‘문화재생(文化再生)’의 의미를 더하고 싶다.
조선후기 ‘쇄국정책’이 주요 국가정책이었던 흥선대원군 집권시절에는 ‘쇄국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애국자이고, 개화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매국노였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고, 평가도 달라졌다. 우리가 일본보다 먼저 개화정책을 실시했더라면 치옥의 일제 식민지가 되었을까? 개화파는 역적이다? 지금의 사람들이 대답해야 한다.
‘실향민의 도시 속초’는 실향민의 도시이기 이전에 외세의 정치에 의해, 국내의 정치에 휘말린 비극이 존재하는 도시였다는 것을 지금의 속초시민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러한 사연을 바탕으로 과거로만 끝난 역사가 아니라 다시 태어날 속초, ‘문화관광 도시’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재생의 형태는 지금의 속초에 사는, 속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스토리형 문화이든, 도시재생형 문화이든…. 속초에서 펼쳐지는 각종행사에 등장하는 ‘북청사자놀음’과 ‘도문메나리농요’를 결합한 공연처럼 서로 화합하는 모습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속초는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속초의 옛날이야기가 정말 옛날이야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우여곡절(?)을 바탕으로 우리는 지금, 지금시대에 맞는, 지금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문화창조에 도전해야 한다.
옛 것과 지금의 것이 어울리는 ‘문화재생’. 각자의 분야와 관심이 다르므로 문화재생이 도시재생의 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생이 도시재생에 포함되어도 좋다. 사람이 있어야 도시가 있고, 사람과 도시가 있어야 문화가 있는 법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자성어이다.
‘옛 것을 알고 나서 새 것을 안다’는 뜻으로 과거 전통과 역사가 바탕이 된 후에 새로운 지식이 습득되어야 제대로 된 ‘앎(지식)’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본 글은 <속초문화 제33호(2017)>에 실렸으나 지면관계상 실리지 못한 부분을 추가해 수정 보완했습니다.
북청사자놀음과 도문메나리농요의 결합.
정상철
속초문화원 부설
속초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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