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이 한반도에서 태어났다는 원죄로 꿈 많던 한 젊은이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27살 청년 인민군 장교가 1952년 20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돼 20년 후인 1972년 2월 47살에 출소해 가정을 꾸려 살아온 지 45년째. 고성군 죽왕면 가진리에 살고 있는 이원곤 옹(93세)의 이야기다. 지난달 18일 고성군노인복지관이 결혼한 지 40년 이상 된 노인부부의 웨딩사진을 촬영해준 자리에서 이 옹을 만났다.
이 옹은 캐나다에 거주하는 친구를 통해 북에 두고 온 처가 재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와 사촌들을 상봉하기 위해 대한적십자사에 8･15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추첨 결과 500명의 예비명단에 선정되지 못했다.
이원곤 옹은 7년 전 서울을 벗어나 가진에 정착했다. 1926년 병인년에 함경남도 이원군 서면 원천리에서 태어난 이 옹은 광활한 바다엔 경계도 없고 나이 들어 고향바다가 너무 보고 싶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옹은 일제 강점기에 함남중학교를 졸업하고 문화부 중대장을 양성하는 학교인 북한 제2군관학교(현 김일성 군사대학)를 나왔다. 이후 중위로 임관해 보위성에 근무하다 한국전쟁에 인민군 총위(우리의 대위)로 참전 중 유탄이 미골에 박혀 영동군 제24후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후퇴하는 부대에 합류하지 못하고 부상병들과 함께 1950년 8월 25일 들것에 실려 옥천을 거쳐 당시 전라남북도 및 충청남도의 거점이었던 전북 금산군(1963년 1월 1일부로 충남에 편입)의 서대산에 자리했다. 이곳에서 인민군이 마을사람들과 추수한 쌀로 이듬해 1월초까지 연명하다 51년 1･4후퇴 이후 이 옹이 소속된 부대와 충남 빨치산 군대가 옥천군 세천터널을 지나는 열차를 습격하자 이튿날 새벽 토벌대가 반격해 군관과 하사관 등 20여명만 현지에 남고 근거지인 금산으로 다시 숨어들었다고 한다. 낮에는 전투를, 밤에는 이동하는 작전을 지속하다 51년 12월 18일 남한의 8사단과 수도사단이 충남도당 지하 근거지를 찾아 토벌에 나서 전북 진안의 성수산과 장수군의 장안산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 해 12월 26일 폭설 밑에 깔린 낙엽송에 몸을 뉘고 있다가 토벌군에 의해 대원 40여명과 함께 체포돼 진안 임시수용소에 됐다. 이어 이듬해 3월 광주포로수용소로 이송됐고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후방 보급부대원 활동을 하고 살상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중 4･19혁명이 나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5･16군사정변 이후 국가보안사범으로 대전, 대구, 청주교도소를 거쳐 만기출소일(72년 5월 12일)을 3개월 앞둔 2월 16일 전향서를 쓰고 가석방되었다. 1969년부터 사상범에 대해 전향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당시 속초에 살던 육촌 형인 고 이용을씨(1906년생)가 전국 교도소장들에게 이 옹을 찾는다는 편지를 썼는데 대전교도소장이 이를 보고 답장을 쓰게 해 면회했다고 한다. 이용을씨의 딸이 이경남 교수(강원대 사대 영어교육과)이고 조카사위가 한진만 교수(강원대 신문방송학과)라고 한다.
이원곤 옹은 72년 출소 후 이원군 차호읍에 살던 친구를 서울 용산에서 만나 그 친구의 친구 소개로 당시 서울 서대문시립병원 서무과에 근무하던 부인 박영자씨(83세)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김일성대학에 다녔던 친구가 현대자동차 시트 제작 납품회사를 운영했는데 논산 제2공장에 취업을 하게 해줘 약 3년 정도 다니다 97년 10월 IMF사태가 발생해 구조조정으로 퇴사했다고 한다.
요즘은 군관학교 다닐 때 철봉에서 떨어져 다친 다리의 통증이 심해 지난해부턴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다. 이 옹의 장수비결은 다름 아닌 35년 내공의 한글서예와 독서라고 한다. 슬하에 딸 2명을 두고 있다.
시대의 운명을 온몸으로 관통한 이원곤 옹의 삶의 질곡이 바로 우리 분단의 역사라 더욱 슬프다.
이수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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