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속초 관광, 양적성장에서 질적관광으로
2. 새로운 관광수요를 위한 트렌디한 콘텐츠의 개발
3. 도시재생에서 찾는 도시관광의 가능성
4. 지역을 닮은 관광, 사회적경제와 만나다
5. 인문관광으로 만나는 속초, 작은 서점 이야기
6. 지속가능한 실향민 문화를 위한 에코뮤지엄
7. 축제와 마이스(MICE)를 통한 관광산업의 재편
8. 특별좌담 : 4차혁명과 관광, 백년 후 속초를 위해
“속초를 찾는 분들이 서점을 하나의 여행지 또는 속초에 오면 꼭 들려야 하는 곳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뒤에서 게스트하우스 겸 서점 ‘완벽한 날들’을 운영하는 최윤복 대표의 말이다. 쇠락해가던 터미널 뒤 공간에 서점을 차린 지 1년 반이 지났다. 지역의 유명 맛집처럼 큰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서점을 방문하기 위해 속초로 온다는 여행객도 만났다. 동네 주민보다 여행객의 비율이 더 많은 골목길 서점의 탄생인 셈이다.
여행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케렌시아(Querencia,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를 뜻한다)가 2018년 트렌드 키워드로 떠오르며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여행이 떠오른다.
폐쇄된 산업공간이 카페로 변신하고(칠성조선소), 오랫동안 문 닫은 건물에 독특한 콘셉트의 음료공간이 생긴다.(비단우유차) 젊은 여행객들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의 SNS로 자기만의 공간을 순례하며 속초방문 인증샷을 남긴다. 아바이마을과 가을동화, 설악산과 동해안, 대형숙박시설로 대표되는 속초의 관광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 중심에 서점의 변신이 있다.
젊은 감각, 작은 서점을 여행명소로
속초 동네서점의 새로운 변신은 ‘동아서점’에서 시작했다. 1954년 처음 문을 연 동아서점은 책의 몰락과 대형서점의 폐쇄가 당연시되던 풍토에서 120평 규모의 공간으로 확장 이전한다. 김영건 대표 특유의 큐레이션과 공간배치가 동네서점답지 않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만나면서 속초의 새로운 볼거리가 되었다. 마침, 동네서점 살리기 등의 국가적 프로젝트도 함께 하며 대한민국 대표 동네서점이 되었다.
‘동아서점’이 토종 동네서점의 새로운 변신이라면 ‘완벽한날들’은 처음부터 관광객에게 더 많은 방점을 찍은 신생서점이다. 버스터미널이라는 공간에 위치했고, 게스트하우스와 함께 운영하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부터 서점을 복합문화공간의 관점에서 시작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개점 이후 최소 한달에 한번 문화이벤트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도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김은미 작가의 ‘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 원화전시회, 김탁환 작가의 신작과 함께하는 강의 등을 기획했다.
동아서점과 완벽한날들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심야 책방의 날’ 행사 참여 서점이기도 하다. 12월까지 매달 마지막 금요일 전국 77곳의 서점들이 자정까지 서점문을 열며 다양한 이벤트를 한다. 지난 6월 29일 동아서점은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10시까지 상영했다. 시행 첫날이어서 참여객이 적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30명 정도의 방문객이 이 행사에 동참했다. 방문객은 ‘2018 책의 해’에서 준비한 에코백과 볼펜책갈피 등의 사은품도 받고, 신간서적도 구매했다고 한다.
‘문우당서림’의 리뉴얼도 주목을 받는다. 80년대 개점하여 오랫동안 속초의 대표서점으로 사랑을 받던 곳이 갑자기 젊어졌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벽이 인상적이다. 264개의 책장에 264개의 책에서 선정한 인상적인 문장이 전시된 것이다.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내려온 문우당 서림의 이해인 디렉터 솜씨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감각은 ‘문우당’을 속초의 인문학 공간으로 브랜딩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2층 한켠에 마련한 커뮤니티 공간은 문학강좌 등 이벤트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했다. 책과 사람, 지역문화가 만나는 공간을 위해서다.
속초형 ‘헤이온와이’ 될 수 있을까
인터넷으로 속초의 서점을 검색하면 서점 투어를 하는 관광객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고유의 문화를 느끼면서 트렌디한 감각을 파는 소통의 공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왜 굳이 속초에 와서 서점에 들르고 책을 사려는 걸까.
최윤복 대표는 “서점 고유의 분위기나 취향, 큐레이션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특히, 젊은 관광객에게는 큐레이션이 좋은 인상을 주는 듯하다. ‘완벽한날들’은 이달의 출판사, 잊지 않아야 될 사건, 여행자를 위한 독서 등 방문객과 주인의 취향이 조화를 이루는 큐레이션을 한다. ‘동아서점’도 마찬가지다. 독립출판사의 서적 외에도 애주가의 서재, 쓰잘데 없이 고귀한 기술들의 목록, 베스트셀러 예감, 금주의 벽돌책 등 재미있는 큐레이션이 손글씨 POP로 소개되어 있다.
속초 태생 서점 기획자의 적극적인 참여도 인상적이다.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는 <당신에게 말을 걸다>를 통해 동아서점의 운영과정을 직접 책으로 엮었다. 최근에는 <속초 여행가이드북(가제)>을 준비 중이다. 출판사 ‘북이십일’의 자회사인 ‘아르테(arte)’에서 준비 중인 ‘대한민국 지역 도슨트' 기획의 일환으로, 전국 약 20개의 도시를 선정해 그곳을 인문학적으로 여행하는 안내서이다. 그중 ’속초편‘을 김 대표와 그의 아내 이수현씨가 함께 집필하고 있다. 속초 방문객을 위한 문화적 장소와 평범한 장소의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한다. 여행 가이드북은 팟캐스트로 먼저 론칭되어 7월부터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해 순차적으로 연재될 예정이다. 최윤복 대표는 지난해 <설악신문>에 속초인문지도 만들기 시민기자로 참여했다. 올해는 <온다 씨의 강원도>라는 여행책자의 인터뷰어로 속초여행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문우당 서림 이해인씨는 지난 4월 설악 아첼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첫 번째 미드나잇 연주회 ‘별 헤는 밤의 아름다운 선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세 서점 모두 젊은 대표의 기획능력이 서점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유능한 기획자가 책을 통해 도시를 바꾼 사례가 있다. 창의도시 사례로 유명한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 이야기이다. 폐허가 되어가던 광산촌을 헌책방 마을로 바꾸면서 세계적인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물론, 관광은 그 결과일 뿐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리처드 부스는 모두가 선택하는 안정적인 삶 대신 헤이온와이 마을의 낡은 소방서에서 헌책을 팔기 시작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헌책을 구입하는 그의 도전을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무도 헤이온와이라는 작은 마을까지 와서 헌책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헌책방으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낡은 창고가 헌책방으로 변모하면서 세계 최초의 헌책방 마을이 탄생했고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특히, 헤이온와이의 북페스티벌인 ‘헤이페스티벌’은 문학가들이 중심이 되어 대화·강연·음악회 등 200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15만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공한 축제가 되었다.
서점을 통해 속초를 재해석하며 새로운 관광명소를 만들고 있는 세명의 젊은이. 그들에게서 속초형 헤이온와이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바란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헤이온와이 북페스티벌. 영국의 작은마을 헤이온와이는 1,300명의 주민이 37개소의 헌책방을 운영한다. 한 젊은이의 무모한 도전이 세계적인 책마을을 만들었다. 동아서점, 문우당서림, 완벽한날들. 속초의 작은 서점과 젊은 기획자를 통해 한국형 헤이온와이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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