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산 사진을 큰 감흥 없이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장의 사진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사진을 다르게 바라볼 것이다.
산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우선 산에 올라야 한다. 등산은 가벼운 차림의 맨몸으로 작은 사진기 하나만 들고 가는 게 아니다. 사진작가의 장비에 산악인의 짐이 더해진다. 카메라에 렌즈 서너 개, 배터리도 여러 개, 삼각대는 필수이다. 임흥빈 작가는 산에서 보통 2박 3일 정도 머무르기 때문에 물과 식량이 있어야 하고 대피소에서 음식을 해먹기 위해 버너와 식기도 챙겨야 한다. 갑자기 비가 내릴지 모르니 우의도 필요하다. 임 작가는 이 많은 것들이 담긴 큰 가방을 메고 네다섯 시간 동안 산을 오른다. 에너지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은 쉽게 가까운 곳으로 한나절 갔다 오면 되지 왜 높은 곳까지 가서 며칠간 고생하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정도 머무는 것은 임 작가가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원하는 촬영 조건이 갖춰지도록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가버린다.
설악산 촬영에 있어서는 날씨가 중요하다. 외설악의 경우 강수량과 적설량이 많고 기후 변화가 심하기에 기상예보를 세심하게 확인해야 한다. 임흥빈 작가는 기상을 매일 확인한다. 예보를 볼 때면 구름의 흐름을 알기 위해 일반인들은 거의 보지 않는 위성사진도 거르지 않고 본다. 구름 상태를 보고서 보통 산행 며칠 전에 출사 일자를 정하는데 기상이 갑자기 바뀌어 자신이 원하는 조건이 된다 싶으면 서둘러 산에 오를 때도 있다.
“설악산 매력은 봉우리와 능선”
작가는 대개 밤 11시에 혼자서 등산을 시작한다. 깜깜한 밤을 헤치고 걸어 올라가면 외롭고 무서울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것보다는 자신이 찍을 광경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긴다. 고요한 산행에서 바람과 냇물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는 일상에 지친 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러나 아무리 즐겁게 산행을 한다고 해도 한밤의 산행에서는 돌발적인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언젠가 산길을 걷다가 고라니가 작가에게 부딪친 적이 있어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다.
정상에 오르면 보통 새벽 세 시쯤이다. 그때부터 몇 시간 동안 빛이 들어오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자신이 원하는 시점이 오면 잠깐 동안 셔터를 누른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이 됐는데도 빛이 안 들어오면 저녁을 기다린다. 예보가 틀렸거나 운이 나쁘면 저녁에도 빛이 좋지 않아 노을빛마저 못 찍게 된다. 초창기에 임 작가는 원하는 사진을 못 찍고 내려온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서 날씨를 분석했고 차츰 작가가 바라던 장면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산 사진은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하기에 까다롭다. 봄날에 하늘과 산, 신록과 운해, 그리고 꽃을 하나의 사진에 담으려면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하고 나무와 꽃도 싱싱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계획한 사진은 탄생하지 못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서 풍경도 변하기에 시기마다 하나의 조건이 어긋나면 다음해를 기약해야 한다. 저 멀리 봉우리를 배경으로 근경의 진달래를 바라는 대로 담지 못하면 1년의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여러 가지 대상을 찍기는 하지만 주로 봉우리와 능선 사진에 중심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만의 이유가 있다. 작가는 한때 소나무처럼 설악산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설악산이 가진 매력은 봉우리와 능선에서 잘 드러난다는 생각을 한 이후 이런 사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봉우리와 능선을 자신의 전문분야로 삼은 것이다. 물론 작가는 산에서 여러 대상을 찍기는 한다. 하지만 작품으로 발표하는 것은 주로 능선과 봉우리를 담은 사진들이다.
시청에서 일하는 임흥빈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기후 조건이 될 것으로 예상되면 며칠 전부터 준비해 하루 휴가를 낸다. 그의 출사 일정이 보통 2박 3일이지만 평일 출사여도 하루 휴가만으로 충분하다. 휴가일 전날 밤 11시에 산에 올라서 휴가일 다음날 새벽에 하산해 출근을 한다.
하산하는 날에 기상 조건이 좋을 것으로 보이면 사진을 더 찍고 싶어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원하는 사진을 찍은 날에는 발걸음이 가벼워 대청봉에서 오색까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두 시간도 안 돼 내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해서 일을 하니 피곤함은 있지만 생산적으로 직무에 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직장인이다 보니 일로 바쁘면 날씨가 좋아도 출사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아쉬운 마음들이 사진에 대한 열망을 더욱 크게 만든다. 아마도 이런 열망은 작가가 좋은 작품을 찍는 원동력일 것이다.
내적 동기가 예술의 길로 인도
많은 이들이 예술이란 어릴 적부터 훈련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며 생업을 가진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임흥빈 작가는 사람들에게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진이라는 취미를 택했고 그 취미는 전문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의 분명한 목적이 그가 그만의 길을 개척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어쩌면 예술은 기교보다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런 내적 동기는 평범한 사람도 예술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임흥빈 작가는 이런 유형의 인물로서 앞으로 더욱 완성된 전형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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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임흥빈 작가
대청봉에서 바라본 남설악의 운해와 노을.
유화 작품 ‘솜다리 설악에 머물다’ - 임흥빈 작가는 유화를 그리는 취미도 있다. 앞으로 작가는 설악산에서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도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 산을 오르기 힘든 때가 오면 ‘설악산 사진가’는 ‘설악산 화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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