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위기 때마다 긍정과 도전의 마음을 잃지 않은 이해인 대표는 자신의 철학으로 꿈을 이어가고 있다.
남을 연기하며 나를 잃다
요가 스튜디오 ‘무해’의 이해인(33) 대표는 매일 아침 동호해변으로 향한다. 일출과 일몰을 앞두고 ‘출근’하듯 바다로 향한다. 맑은 날이면 바다로 들어가 요가 수련을 한다. 바다를 보며 매트를 펴고 바람결을 느끼며 사람들과 호흡을 나누는 일상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연극배우로 살던 그는 수차례의 위기를 견뎌낸 끝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예술 요가 공간 ‘무해(無海)’를 만들어냈다.
인천 소래포구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 시절 우연히 전단지를 보고 청소년 뮤지컬 극단에 입단하며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목소리를 교정하려고 시작한 계기는 오히려 무대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었다. 짧은 대사 하나부터 시작해 꾸준히 무대에 올랐고, 결국 안톤 체홉의 ‘청혼’에서 주인공 역을 따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국립극단에서 활동하며 ‘바냐삼촌’의 쏘냐 역을 비롯한 다양한 배역을 맡았지만, 매번 다른 인물을 연기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커갔다. 공연 후에는 감정 소모와 허탈감이 찾아왔고 결국 번아웃(소진)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바냐삼촌’의 작품 쏘냐 역을 맡으며 극단 활동을 마무리했지만, 이 대표가 처음으로 자신의 자아를 마주한 시절이었다.
유럽에서 찾은 쉼표 ‘오다카 요가’
유럽의 자연 속에서 접한 명상 요가는 그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안겨주었다. 바다와 숲, 바람과 햇살 속에서 호흡하고 움직이며 그동안 외면해온 ‘나’를 마주하게 되었고, 이는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귀국한 뒤, 극단 활동을 마무리한 그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요가의 길로 들어섰다. 제주에서 접한 ‘오다카 요가’는 그가 찾던 삶의 방식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오다카’는 인도지역의 고대언어 중 하나인 팔리어로 ‘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오다카 요가’는 물의 지혜를 추구한다.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동작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 상태를 지향한다. 단순한 신체 훈련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수련하는 여정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 국내에서 ‘오다카 요가’를 수련할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제주에서 수업이 가능했던 선생님도 여건상 강의를 이어가기 어려워졌고,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포기하지 않던 그는 제주도 선생님의 소개로 오다카 요가 창시자에게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자세 교정부터 이론, 철학까지 배운 끝에 결국 자격증을 취득했고, 국내에서 오다카 요가 수련을 할 수 있게 됐다.
양양에서 홀로, 그리고 함께 서다
양양과의 인연은 여행에서 시작됐다.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인들과 요가를 즐기던 중, 클래스를 열어보자는 첫 번째 제안을 받았지만 자신감 부족으로 선뜻 나서지 못했고, 이후 쏠비치에서 두 번째 제안을 받았을 땐 망설임 없이 승낙하며 귀촌을 결심했다.
연고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꿈을 향한 길은 즐겁기만 했다. 일출·일몰 요가를 위해 구한 집은 월세가 비쌌지만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하나하나 이겨냈다.
그러나 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찾아왔다. 바로 외로움과 정서적 공허감이 요가를 멈추게 만든 것이다. 그는 요가를 잠시 내려놓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에 나서며 마음의 균형을 되찾았다. 그렇게 정착한 지 3년, 마침내 요가와 예술을 함께 담은 예술복합공간 ‘무해’가 탄생했다.
텅 비어 흐르는 열린 공간
동호해변에 자리 잡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바닷가와 인접한 공간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수 개월간 찾아다녔고 어렵게 계약했지만, 건물 매매로 입점이 무산되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새로운 건물주와 연결되어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았고, 결국 지금의 공간을 열 수 있었다.
‘무해’는 단순한 요가원이 아니다. 요가와 명상은 물론 무용, 그림, 음악까지 아우르는 예술 복합 스튜디오로, 자연 속에서 예술로 살아가는 법을 실험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무해는 제 삶의 방향성과 철학이 녹아 있는 공간이에요. ‘무해(無海)’라는 단어는 ‘없을 무’, ‘바다 해’로, 직역하면 ‘바다가 없는 상태’예요. 하지만 제게 무해란 ‘텅 비어 있음 속에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 해를 끼치지 않고도 자유롭게 흐르는 삶의 태도’입니다. 요가도 사람도 경계 없이 흐르기를 바라요.”
현재 ‘오다카 요가’ 수련을 이끌어가는 이해인 대표와 참여자들 모습. 요가를 통한 연결과 호흡을 실천하는 시간이다.
요가와 예술로 숨 쉬는 곳 ‘무해’
이해인 대표는 앞으로 국내외 예술가들과 협업해 ‘무해’를 요가 철학과 예술을 결합한 플랫폼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오직 요가만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예술가들과 클래스를 함께 하고, 언젠가 ‘오다카 요가’의 창시자도 초청해 글로벌 워크숍을 개최하는 공간으로 키울 생각이다.
“서핑과 더불어 바다 요가가 양양의 대표적인 해양문화로 자리잡도록,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요. 해외에서는 이미 자연 속 요가가 정착되어 있는데, 양양에서도 바다 요가가 일상의 힐링 프로그램이 되면 좋겠습니다.”
연기에서 요가로, 도시에서 바다로, 타인의 삶에서 자신의 삶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 대표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새로운 문화가 흐르는 공간을 만들어 가기 위해 오늘도 동호해변에서 자신만의 호흡으로 꿈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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