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마음이 동해’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이 담소를 나누며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활기찬 웃음소리와 경쾌한 대화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의 주인공이 모두 청년이어서 반가웠다.
김의종(40) ‘마음이 동해’ 대표는 인터뷰에 앞서 미리 정성스레 내린 커피를 건넸다. 은은한 원두향이 퍼지는 아늑한 공간 한쪽에 자리 잡고, 그는 기자의 질문에 천천히 응답하기 시작했다.
쉼이 필요했던 순간, 무작정 양양으로
김 대표는 서울에서 IT 스타트업을 전전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과로와 번아웃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다. 마지막으로 다니던 회사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실업자가 되었고, 공황장애까지 겹쳐 서울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만약 혼자였다면 극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은 아내(당시에는 친구)였다. 아내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김 대표는 아내로부터 양양에서 정착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던 그는 그녀를 따라 양양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회복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정착 과정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진지한 눈빛의 김의종 대표, 정성스럽게 손님들에게 메뉴를 이야기하고 있다.
양양에서 살아남기, 청년에겐 쉽지 않아
양양에 도착한 후, 김 대표는 처음 6개월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도우며 생활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소득이 필요했고, 직장을 구하려 했으나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대게 손질 공장, 뷔페 준비, 건설 현장 등 다양한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현지 노동 환경과 지역 사회의 특성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알려준 ‘비치마켓’을 통해 공예를 접하게 되었고, 빈 컨테이너에서 조개를 주워 만든 제품을 판매하며 사업의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공예 작업을 하며 제품을 납품했던 카페에서 소품샵을 운영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김 대표는 망설였지만, 행동파인 아내의 독려로 청년창업 대출을 받아 과감히 실행에 옮겼고, 그렇게 ‘마음이 동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초반에는 공간을 가꾸고 다양한 지역 굿즈를 개발하며 사업을 키워갔지만,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였다. 지역민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어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며 점차 지역사회에 녹아들었고, 이는 단순한 네트워크를 넘어 일상과 사업 모두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사진 속 장소는 김의종 대표가 머무는 현실의 공간(왼쪽)과 그가 꿈꾸는 이상 세계(오른쪽)를 의미한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청년들의 정착 조건
김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귀촌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지역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이 양양에 정착하려면 기존의 삶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착을 결심하기 전에 지역의 삶을 가볍게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달 살기 프로그램과 문화체험을 연계하고, 만약 지역살리기 지원금이 있다면 이를 활용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청년들은 부담 없이 양양을 탐색하며 정착 가능성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죠.”
또한, 청년들이 지역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동호회나 문화 모임 같은 커뮤니티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귀촌을 했던 당시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현지인들과 친해질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귀촌 초반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경제적 안정보다 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동해’는 곧 자신이라던 김 대표. 그는 메뉴판을 어린 시절 사진 앨범으로 꾸며, 방문객들이 커피와 함께 그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마주하도록 했다.
그가 그리는 청년과 양양이 공존하는 길
김 대표에게 ‘마음이 동해’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그는 이 공간이 곧 자기 자신이며, 손님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발견하길 바란다. 나아가 양양을 찾는 청년들이 잠시 머물며 쉬어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마음이 동해에는 저만의 색깔이 담긴 특별한 공간이 있어요. 이곳의 카운터는 제가 가장 오래 머무는 현실 세계를 의미하고, 카페 가장 구석에 자리한 좌식 평상은 쉽게 닿을 수 없는 이상 세계를 상징하죠. 손님들에게 가장 편안한 쉼터가 되길 바라며 마련한 공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와는 가장 거리가 먼 곳이기도 해요. 양양에 정착하는 청년들 역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길을 찾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는 현실과 이상, 익숙한 길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고 말했다. 양양은 그런 고민을 품은 청년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는다. 서핑을 계기로 많은 청년이 반 호기심으로 정착을 고민하는 지금, 단순한 유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정착으로 연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한 청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 대표는 익숙한 미소로 그를 맞이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 순간, 기자는 이 장면이 양양 전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상상했다. 이주 청년들이 지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공간이 늘어난다면, 양양은 여행지를 넘어 새로운 시작의 터전이 될 것이다.
홍기성 기자 cogshi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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